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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교계뉴스] 말레이지아 원주민을 위한 성탄맞이 성경후원요청 오랑후탄 정글선교사 박철현 목사 크리스천헤럴드2025.11.17
    성경을 구할 수 없는 회교국가인 말레이지아에서 원주민 선교 중인 박철현선교사가 지역 주민들을 위한 성경 구입을 위해 후원을 요청하고 있다. 대장암 말기에도 정글로 돌아가 선교사역에 열중하고 있는 박 선교사는 주민들이 조금씩 글을 깨우치면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됐지만 막상 성경책을 구할 수 없어 인도네시아에서 성경을 수입하고자 후원 요청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주민들에게 성탄선물로 나눌 계획인 박선교사는 성경 한권이 1만2천원으로 말레이지아를 위한 기도요청도 함께 보내왔다. 문의 press@christianhera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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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교계뉴스] 신간안내 - 신춘식 박사 신간, “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신학” 크리스천헤럴드2025.11.17
    신춘식 박사가 2024년 캘리포니아프레스티지대학교(California Prestige University)에서 선교학 철학박사(Ph.D. in Contextual Studies) 학위를 받은 논문을 바탕으로 집필한 신간, 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신학의 출판 기념회가 동 신학교에서 지난달 22일, 개최됐다. 본서는 역사신학과 선교학이라는 두 관점을 통합하여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사역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그가 남긴 선교학적 유산을 오늘날의 선교 실천과 연결짓는다.저자는 인도에서 8년간 선교사로 사역하며, 에드워즈를 단지 미국 내 부흥 운동의 중심 인물이 아닌, 선교사적 시각에서 재해석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이후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과 캘리포니아프레스티지대학교 박사원에서 선교학을 전공하며, 에드워즈의 사역에 담긴 선교학적 의미를 심도 있게 탐구하였다.에드워즈를 균형 있게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두 렌즈 이론’(Two-Lens Theory)을 제안합니다. 이는 복음주의 신학적 통찰과 선교학적 통찰을 함께 적용함으로써, 에드워즈와 같은 인물을 보다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기독교 선교 역사를 깊이 있게 고찰할 수 있는 방법론이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에드워즈의 선교신학을 더욱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데 기여합니다”라고 밝힌다.본서는 조지 마스던의 역사신학적 분석과 함께, 폴 피어슨, 케네스 라투렛, 랄프 윈터, 도널드 맥가브란 등 선교학자들의 통찰을 바탕으로 에드워즈의 선교적 기여를 재조명한다. 에드워즈는 선교 운동의 확산, 선교 정보의 보급, 국제적 기도 네트워크의 형성, 구속사적 해석을 통한 선교의 재정립, 그리고 지상명령 개념의 확산에까지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저자는 에드워즈의 삶을 목회와 학문, 그리고 마지막 순교적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희생의 영성을 보여준 본보기로 제시하며, 오늘날 선교학적 사유와 실천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자 한다. 이 책은 에드워즈의 사역을 통해 선교의 본질을 되묻고, 현대 선교의 방향성을 성찰하는 데 귀중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신춘식교수는 모 TV와의 간증을 통해 "철가방 소년에서 복음전도자"로 소개된, 저자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초·중학교 시절, 지리산 골짜기에서 지게를 지며 가족을 도왔고, 중학교 졸업 후 서울 을지로 청계천에서 낮에는 철가방, 밤에는 책가방을 들고 고등학교 과정을 1년 만에 검정고시로 마쳤다. 그는 어려운 환경을 탓하지 않고 배움과 꿈을 향한 길을 스스로 개척하며, 고난을 인생의 디딤돌로 삼았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중 결핵 임파선염으로 큰 고난을 겪었지만, 말씀을 붙들며 치유를 경험했고, 그 은혜 속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사역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고 소개된 바 있다. 강원도 양구에서 육군 군종병으로 복무를 마친 후, 저자는 사역자로 부름받은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독학으로 교육부 영어영문학사(B.A.)를 2년 만에 취득하며 배움의 길을 이어갔다. 이후 총신대학교(B.A.),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에서 신학과 목회학을 공부하였고,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에서는 역사신학을 전공하며 깊이 있는 학문적 토대를 쌓았다. 특히 신학대학원 재학 중에는 성경고사에서 전체 1등을 차지했으며, 풍부한 성경 암송과 깊은 말씀 이해로 ‘걸어다니는 성경관주’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왔다.저자는 한국에서 군부대 독수리교회를 비롯해 서울 성천교회, 이리중앙교회 등 여러 교회에서 유년주일학교, 청년부, 시니어사역, 교회행정, 교구사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회 및 사역 경험을 쌓았으며, 차세대 리더십 양성에 헌신해 왔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이리중앙교회 사역을 하면서 매년 청년 대학생들을 인솔하여 인도, 필리핀, 중국, 몽골, 인도네시아 등에서 단기 선교를 경험했다. 2007년 성탄절 다음 날, 갑작스러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네 살, 여섯 살, 여덟 살이던 세 자녀와 아내와 함께 온 가족이 인도 선교사로 떠났다.저자는 인도 벵갈루루(Bengaluru, India) 지역에서 8년간 사역하며, 신학교 강의, 목회자 훈련, 현지 교회 지도자 양성에 헌신하였다. 그는 Asia 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 & Seminary, New Life College, Bethel New Life College, Sharon Pastoral Seminary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신학 교육과 현지 사역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힘썼다.2015년 인도 정부의 추방 정책으로 도미 후, 저자는 오랜 관심을 두었던 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신학을 심도 있게 연구하여, 2018년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국제선교목회학 박사학위(D.MinGM.)를 취득하였다. 이후에도 연구를 지속하여, 2024년에는 California Prestige University에서 철학박사학위(Ph.D.)를 받았다.현재 그는 GMS 소속 선교사로서 미국 서부지부 지부장직을 맡고 있으며,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를 섬기는 한편, CPU 박사원 선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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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생명을 잇는 길이다 크리스천헤럴드2025.11.17
    한국은 이미 인구 감소의 길로 들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총인구는 2025년 약 5,167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며, 향후 10년에는 약 5,071만 명, 20년 뒤에는 약 4,797만 명까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는 출산율 저하와 급격한 고령화에 기인한 구조적 변화이다. 실제로 최근 청년층의 종교 소속 역시 급감하고 있다. 예컨대, 20대와 30대에서 기독교인 비율은 각각 9 %, 11 % 수준으로 전체 국민 대비 현저히 낮다. 이러한 사회 변화는 단지 숫자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세대 단절’이라는 교회 내부의 미래 위기를 뜻한다.그렇다면 교회는 이 현실을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있는가? 많은 교회가 여전히 ‘전도’와 ‘선교’라는 미션에 집중해 왔다.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해외 선교지를 확장하며 영혼 구원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출산·육아·가정이라는 ‘생명의 연속성’과 ‘세대 계승’이라는 과제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교회가 영적 생명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물리적·사회적 생명 곧 ‘아이 낳고 기르는 문화’에는 충분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더욱이 교회 내부에는 젊은 세대가 떠나는 현실이 있다. 조사에 따르면, 청년대학부 인원은 2014년 약 16만 2734명에서 2022년 11만 4222명으로 8년 새 약 30 %가 감소했다. 그 이유로는 단지 사회적 피로감이나 경제적 부담만이 아니라, 교회 문화에 대한 젊은 층의 실망감이 상당하다. ‘목회자의 언행 불일치’, ‘비민주적 의사소통 구조’, ‘끼리끼리 문화’ 등이 이탈 요인으로 나타났다. 또한 젊은이들은 교회가 시대 변화와 삶의 고민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교회가 여전히 과거 권위주의적 리더십 구조에 머물러 있고, 물질적 부와 번영신학에 치우친 모습이 보일 때 신뢰는 흔들린다.이처럼 인구 절벽이라는 외부 현실과 청년 이탈이라는 내부 위기가 교회 앞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먼저, 교회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구 감소는 단지 통계적 수치가 아니라 ‘생명을 낳고 기르는 문화’가 위협받고 있다는 신호다. 교회가 이 변화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 영적 생명과 더불어 생물학적·사회적 생명을 함께 품는 사역이 교회에게 요구된다.다음으로 대응 전략이다. 교회는 세대 간 통합과 소통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청년부·주일학교가 단순히 세대별 모임에 머무르지 않고,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과 신앙을 연결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또한, 출산·육아 지원 네트워크, 가정 돌봄 사역, 청년 멘토링 프로그램 등 구체적인 생명 문화 사역을 교회 지형 안에 설계해야 한다. 동시에 리더십 구조의 개혁도 중요하다. 재정 투명성 확보, 권위주의 청산, 교회 내 민주적 소통 체계 마련은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다.마지막으로 구체적 움직임이다. 교회는 지역사회와 손잡아야 한다. ‘가족 돌봄 공동체’, ‘지역 아동청소년 센터’, ‘세대 간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통해 교회가 단지 예배당 안의 조직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생명 터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청년 세대를 단순히 보호해야 할 존재로 보지 말고 ‘교회의 현재’이자 ‘미래 동력’으로 신뢰하고 책임을 나눠야 한다. 청년이 주도하고 책임지는 사역 모델은 교회의 오래된 위기를 극복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이제 질문을 던져본다. “교회는 지금 ‘인구 절벽’이라는 사회적 지형 변화 속에서, 단지 살아남기 위해 분주한 기관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생명을 낳고 기르는 생명공동체로서 새로운 비전을 품고 나아가야 할까?” 우리는 후자가 가능하다고 믿어야 한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다. 교회가 스스로를 ‘생명의 공동체’로 재정립할 때, 잃어가는 시대 속에서 잃지 않을 한길이 보인다.지금이 바로 기회이다. 교회가 자신 안에 머물던 구조를 넘어, 세상 속으로 내려가고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공동체로 거듭날 때, 청년들은 다시 돌아오고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다시 예배당에 스며들 수 있다. 생명은 숫자가 아니라 흐름이다. 교회가 그 흐름을 품을 수 있다면, 인구 절벽이라는 어둡고 높은 파도 속에서도 한줄기 빛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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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 재 건 크리스천헤럴드2025.11.17
    오래된 보일러에서 샌 물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 보일러 주위는 물론, 화장실과 복도 바닥까지 물이 스며들어 곳곳이 썩고 망가졌다. 보험회사에서 나와 점검 후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보수 공사를 위해 벽안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다 부수고 뜯어냈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오랫동안 누수가 진행되고 있었고, 보이지 않는 벽안속에는 나무와 석고판이 썩고 곰팡이가 쓸고 있었다. 물은 아래로 흘러 바닥까지 훼손시켰다. 문제의 원인은 누수이지만 보일러에서 물이 새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더 큰 화근이었다. 하필이면 시야가 가린 보일러 뒤쪽에서 물이 새어 오랫동안 벽속까지 서서히 스며들어 피해가 컸다. 누수현상을 초기에 알았다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지만 피해가 표면으로 드러나기 전까지 전혀 몰랐다. 곰팡이를 그대로 방치해 두면 다른 곳으로 전이되어 벽 전체로 퍼진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안에서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독소를 키우게 된다. 곰팡이는 담배보다 더 해로워 장시간 동안 노출되어 있으면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리모델링중 곰팡이가 발견되면 의무적으로 알리고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 알고도 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만큼 건강에 해롭다. 또 집 자체에도 치명적이다. 집을 지탱하는 기둥이 썩으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물이 스며든 흔적이 발견되면 벽이든, 바닥이든, 천장이든, 어디든 침범된 부위는 모두 다 뜯는다. 기둥과 철골 등 기본 뼈대만 남겨놓고 모두 뜯어낸다. 수리 후 원상 복구하는 비용과 보수공사로 인한 불편 등, 손해가 막대하지만 예외는 없다. 작은 곰팡이라도 그대로 두면 주위로 퍼져 전이되기 때문에 뿌리째 뽑아야 한다. 결국 대대적인 리모델링은 불가피하다.우리 몸도 다르지 않다. 곰팡이와 유사한 암이 몸 안에 발견되면 수술은 불가피하다. 몸을 열어 암이 발견된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암이 커지고 온 몸으로 전이되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영혼을 병들게 하는 죄도 곰팡이와 같다. 밖으로 드러난 죄는 스스로도 감지할 수 있으니 조심할 수 있지만 내면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죄는 자신도 모를 수 있어 그대로 방치해 두면 영혼을 병들게 한다.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심도 있게 다루실 때가 바로 이때다. 평소엔 죄를 지어도 쉽게 용서해 주시고, 간과하시는 것 같지만 그 죄가 깊어져서 더 이상 내버려 두면 안 되는 지경이 되면 그때는 대대적으로 우리 죄를 다루신다. 그 문제가 근간에 이르면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있어서 전인격적인 공사를 강행하신다. 깊은 곳에 자리잡은 죄를 들어내시기 위해 하나님은 날카롭게 허물을 하나씩 베어 내신다. 죄를 다루시는 과정이 매우 아프고 견디기 힘들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같은 시련을 지나기도 한다. 소망이 끊기고 재기하지 못할 것 같은 좌절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다. 우리를 벌하시는 과정이 아니다. 병든 우리의 내면을 해부하는 과정이다. 죄의 근간을 뽑아서 그것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막으시는 것이다. 썩은 살을 도려내고 새 살이 돋게 하는 치료의 과정과 같다. 죽어가는 영혼을 회복시키고 다시 재건하시는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다. 또한 재건의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뜯어낸 벽안을 들여다보듯이 우리 속안을 보게 되어 죄가 어떻게 침투했는지 원인을 알게 하고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심하게 한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 내면은 어떻게 설계가 되어 있는지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좀 더 알게 된다. 아픈 만큼 성숙해져서 이전 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다. 보수공사를 마칠 때까지 많은 불편을 겪어야 한다. 일을 제대로 할 수도 없고, 씻을 수도 없고, 건조를 위해 밤새 돌아가는 선풍기 소음으로 잠을 설친다. 그러나 공사가 끝나면 낡고 썩은 곳을 뜯어낸 자리가 재건되어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를 병들게 한 곰팡이가 제거되었다는 확신으로 마음의 평안도 되찾게 된다. 다시 건강한 삶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축복의 재건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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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신동식 칼럼 - 교회가 지역에 있는 이유 크리스천헤럴드2025.11.17
    교회는 구원받은 이들의 모임입니다. 이들을 성도라 부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에 지체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 근거는 예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내 교회”를 세우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도로 부름받은 이들에게 주어진 제자들에게 주어진 일은 교회세움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준 지상명령이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는 일입니다. 또한 승천하기 전에 하신 말씀이 땅긑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했습니다.제자들이 명령을 받고 순종한 일이 바로 교회 세움입니다. 흩어진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세운 첫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서쪽으로는 바울과 바나바를 전도자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도마·다대오·바돌로매 등을 파송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빌립보 지역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에베소 지역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고린도 지역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데살로니가 지역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가는 지역마다 사명에 충실하게 교회를 세웠습니다. 동쪽으로 간 사도들 역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르메니아는 301년에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됩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국교가 됐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의 반발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박해 가운데 쫓겨났지만, 복음의 역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물론 로마 교회라는 거짓 교회의 박해와 방해가 지속됐지만, 한번도 로마 교회 교인이 아니었던 사도교회 성도들의 열심으로 종교개혁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마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16세기 종교 개혁은 참 교회로 회복을 가져왔습니다.우리의 신앙은 이러한 역사 속에서 존재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첫 한글 성경을 가져다 준 로스는 스콜틀랜드 장로교회 선교사입니다. 존 로스는 위클리프의 신앙을 이어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경 중심의 신앙을 중심으로 선교사역을 했습니다.그 열매가 바로 존 로스의 누가복음입니다. 이 성경의 서문에 위클리프 성경이 영국에서 했던 일을 이 성경이 조선에서 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위클리프는 성경을 기준으로 신앙생활에 임했던 윌라드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윌라드는 이미 8-12세기에 자체 성경을 가졌던 알비지역의 발도파였습니다. 이 발도파는 불가리아 보고밀파의 함께 참 교회를 세웠습니다. 보고밀파는 아르메니아의 바울파 성도들이 강제 이주를 통하여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이 유구한 역사의 흐름 가운데 오늘 우리 교회가 존재합니다. 교회는 선교단체가 아닙니다. 파라처치(para church)는 지역교회(local church)를 세우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지역과 관계없습니다. 그러나 지역교회는 지역 목사와 함께 지역에 존재하면 성례와 권징을 시행합니다.  한때 발도파는 고난과 박해를 받을 때 생존을 위해 순회 설교자를 세웠습니다. 설교자들이 대부분 순교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역교회를 형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으로 교회가 안정되자 지역교회와 목사를 세웠습니다. 그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교회는 지역에 존재합니다. 지역에 존재하는 것은 지역을 복음화시키고 건강한 지역으로 살리기 위함입니다. 지역에 교회가 있는 것이 기쁜 일이 돼야 합니다. 지역민들에게 교회가 있어서 좋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역에 오랜 시간을 버티어낸 교회가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그러한 반열에 들어서도록 힘써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전해준 성경중심의 신앙 솔라 스크립트라(오직 성경)이 분명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면 내 생각을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터가 무너집니다. 터가 무너진 교회는 오래가지 못합니다.터가 튼튼한 교회는 지역과 함께 공존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우주적인 교회의 한 지체입니다. 지상교회는 모두 우주적 보편교회의 지체입니다. 그래서 지역에 있는 개별 교회들이 건강하게 자랄수 있도록 기도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고 보존되는 일입니다. 교회의 공교회성은 중요합니다. 물론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는 공교회입니다. 이것이 모든 교회의 사명입니다. 공교회를 위해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은 성경과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기본적 세 가지가 잘 준비되면 지역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지역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역을 섬기는 것이 교회의 사명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역 교회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교회는 지역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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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16 김광근 - 하나님이 아끼시는자 크리스천헤럴드2025.11.17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 시편 127장 1-2절우리는 왜 열심히, 부지런히 달리는데도 평안은 더디 올까요?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세우지 .. 지키지 아니하시면.. 헛되도다"라고 단호히 밝힙니다. 혹, 우리의 문제는 '수고의 부족'이 아니라, '주권의 전도'에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 없이 세운 집은 시간의 균열을 피하지 못하고, 하나님 없이 지킨 성은 두려움이 스며들며 하나님 없이 새벽을 여는 근면은 끝내 "수고의 떡"만 먹는 삶이 됩니다.이 헛됨의 고리를 끊는 해답은 먼저의 전환'에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일보다 먼저 아버지를 찾으셨습니다. "주께서 아끼시는 자"란 바로 십자가의 은혜 안에 머물며, 집과 성의 주권을 주께 돌려드리는 자입니다.신앙의 법칙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구하는 자를 하나님이 아끼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집의 머릿돌이 되시고 중심에 서실 때, 우리의 수고는 헛됨에서 해방되고 우리의 파수는 불안에서 자유하게 됩니다이제 우리의 하루 질서를 새롭게 합시다.오늘 해야 할 일 위에 "주여, 세우소서"를 기록하며 계획을 봉헌하고 결정의 문턱마다 "주여, 지키소서"를 속삭이십시오. 그리고 밤이 되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말씀을 암송하며 염려를 내려놓으십시오.잠은 내가 아니라 주가 지키신다'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먼저 하나님 그 다음에 모든 것"을 택할때, 우리의 수고는 의미가 되고 잠은 선물이 되는 복된 하루를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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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감사의 계절, 11월에 드리는 감사 크리스천헤럴드2025.11.17
    1 오늘도 새날 주시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특별히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폭포수같이 내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첫 시간을 열게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2 아브라함을 대책 없이 부르신 것 같지만 그에게 명령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할 때 이유도 묻지 않고 순종한 아브라함을 마침내 거부가 되게 하시고 믿음의 조상까지 만드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서 나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을 주시기를 약속하셨으니 함께 이 복을 동료 사모님들에게도 전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3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전에 반드시 그릇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그 기간 동안은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마다 답답하지만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그릇을 준비하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상상을 초월하는 축복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찬송과 감사를 드립니다.4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은 어떤 경우에도 겸손할 수 있는 복입니다. 내 그릇 안에 무엇이 담겨 있다면 비워질 때까지 기다리시는 이유도 복을 누릴 수 있는 겸손을 만드시는 시간이기에 기다림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님을 후에 비로소 알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5 다윗에게도 오랜 기간 동안 예상치 못한 사울로부터 쫓기는 시간을 허락하신 이유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만드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난만이 이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기에 오늘의 고통은 결국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성취되는 시간이기에 이때 나오는 감사는 뜨거운 눈물이 범벅되어 나오는 감사입니다6 우리가 추구하는 복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에 들지도 않습니다. 때로는 마시기에 쓴 잔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는 자신의 기호와 상관없이 달게 받고 견디어 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이기에 이런 자가 되게 하실 것을 기대하며 감사를 드립니다.7 우리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를 원하며 인정을 받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중심의 사람은 사람의 인정과 칭찬보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것으로 충분하게 생각하고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니 이런 성숙한 신앙을 간절히 바라면서 감사를 드립니다.8 전 세계 경제가 위기에 있는 현실을 볼 때마다 내일의 염려가 밀려옵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과 상관없이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강조하시는 것은 우리는 부모 없는 고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늘 아버지가 책임져 주실 것을 믿을 때만이 그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하나님의 자녀 됨을 잊지 않고 현실 속에서 믿음을 살아낼 것을 다짐하며 감사를 드립니다.9 선생님의 죽음으로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19)라고 말씀하신 이후부터는 제자들이 담대해진 것처럼 오늘날 불안증과 공포에 시달려 벌벌 떨고 있는 자들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 주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해 주실 것을 간곡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감사를 드립니다.10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채 찍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울고 있는 여인들에게 당부하시기를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와 자녀들을 위해 주님이 주시는 눈물을 흘리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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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55
    [오피니언] 이영훈 컬럼 - "아주 보통의 하루"를 위하여 크리스천헤럴드2025.11.17
     “오늘도 별일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이 말이 주는 느낌이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아보하’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말로, 특별한 사건이나 성취 없이도 평범하고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화려한 일상을 연출하거나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애쓸 필요 없이, 그저 무탈하게 보낸 하루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행복을 쫓아 달려가는 것조차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아보하’는 새로운 위안이 되고 있다.돌이켜보면 이러한 ‘아보하’의 정신은 성경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라고 말씀하셨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치신 것이다.시편 기자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노래하며, 들의 짐승과 공중의 새까지도 먹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일상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은혜를 깨달았다.예레미야애가에는 이런 고백이 담겨 있다. “야훼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22~23). 하나님의 은혜는 매일 아침 새롭게 주어진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따뜻한 밥 한 끼, 가족과의 소소한 대화, 편안한 잠자리까지 이 모든 평범한 순간들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그런데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더 행복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SNS에는 화려한 일상과 특별한 경험들이 넘쳐나고, 더 큰 성공과 더 많은 성취를 추구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이 그런 것들을 얻어도 마음은 더 공허하다고 호소한다. 그리고 다시 더 큰 것을 찾아 헤매게 된다.‘아보하’는 이런 행복 강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특별한 성취나 화려한 경험이 없어도 괜찮다고, 오늘 하루 큰 탈 없이 지낸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는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과 닮아있다.그렇다면 신앙인이 ‘아보하’를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감사하는 마음이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모든 순간에 감사해야 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라는 말씀처럼, 평범한 일상 자체가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다.둘째,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이 오늘 맡겨주신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이다. 매일의 기도, 말씀 읽기, 이웃을 향한 작은 배려 등 평범해 보이는 신앙의 실천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예배가 된다.셋째,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화려해 보이는 삶과 비교해 자신을 평가절하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고유하게 지으셨고, 각자에게 맞는 길을 예비하셨다. 남의 길이 아니라 내 길을 걸을 때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다.이 세 가지를 실천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거룩한 시간이 된다. 거창한 활동이나 큰 헌신이 아니어도 괜찮다. 하나님은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매일 경험하는 바로 오늘, 이 평범한 하루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특별할 일이 없어 보이는 일상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거룩한 시간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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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54
    [건강칼럼] 당 뇨 크리스천헤럴드2025.11.17
    "삼다일소(三多一少) 다음(多飮), 다뇨(多尿), 다식(多食), 많이 먹고 마시며 소변도 많이 보며 체중은 감소한다" 한방에서는 소갈(消渴)이라고 하는 당뇨병 이야기입니다. 현대인에게서 가장 심각한 만성 질병으로 알려져 있는 당뇨병은 인슐린 작용의 부족으로 만성 고혈당증되어 신체에 여러가지 이상증세를 동반하는 질환입니다. 혈당이란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로부터 공급되는 포도당으로 일종의 연료 역할을 하는 에너지이고, 인슐린이란 높아지는 혈당을 조절하는 물질입니다. 인슐린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 몸 속의 에너지, 특히 당분이 잘 이용되지 않거나 쌓여서 충분한 영양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변으로 배출되어 세포가 영양실조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정상인은 먹는 음식물에 의하여 혈당이 높아지면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고, 분비된 인슐린이 혈액내의 당분을 세포속으로 운반해 줌으로써 세포가 건강하게 제기능을 발휘하는데, 당뇨병이 있는 사람은 당분을 이용하지 못하므로 기운이 없어지고 쉽게 피로해지며, 많이 먹는데도 불구하고 체중이 감소하거나 혈당이 증가하여 고혈당이 되고, 고혈당이 지속되면 실 핏줄과 같은 미세혈관 합병증과 큰 혈관에 이상이 생기는 동맥경화증 같은 여러가지 합병증의 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당뇨병은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치료 방법으로, 심한 사람은 인슐린 주사를 맞고, 조금 덜한 사람은 운동과 식사요법을 선택하지만, 평생동안 인슐린 주사를 맞을수도 없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는 성경말씀을 살펴본 후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열왕기상 2장1절에서 9절은 다윗이 죽기 전에 그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한 내용인데 첫 번째는 하나님을 잘 섬기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다윗 군대의 총사령관이었던 요압을 죽이라는 내용인데, 이유는 다윗왕국이 아직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을 때, 적장 아브넬이 다윗에게 항복하려고 왔는데, 요압이 동생 아사헬을 죽였다는 사적인 감정으로 아브넬을 죽임으로써 전쟁없이 남북을 통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던 일과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했을 때의 적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아마사가 다윗에게 항복했을 때 요압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아마사 또한 죽였으므로 요압을 죽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의 유언은 압살롬이 반역을 해서 다윗이 피난을 갔을 때, 바르실래라는 노인이 다윗과 군대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잘 해주었으므로 그 노인의 아들들에게 너도 잘 해주라는 것이고, 넷째의 유언 내용은 바르실래와는 반대로 다윗에게 저주의 말로 상처를 준 시므이를 나는 화합차원에서 살려주었지만, 너는 기회주의자인 그를 죽이라는 내용입니다.1.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2.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3.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찌라 4.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첫번째 유언이었고, 두 번째 유언, 5.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6.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세 번째 유언, 7.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네 번째 유언, 8.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9.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찌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찌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다윗왕의 두 번째와 네 번째의 유언을 보면 다윗은 엄청난 인내심을 가졌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좀더 상세한 내용은 사무엘하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다시, 인슐린이 부족해서 당뇨병에 걸린다고 무작정 인슐린 주사를 맞거나 또는 음식조절을 한다고 새밥처럼 조금 먹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내 몸의 췌장은 왜 인슐린이 잘 나오지 않는가를 생각해보고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췌장이 건강해야만 음식물이 들어왔을 때 인슐린이 제대로 나오는데, 췌장의 건강은 췌장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공급될 때 가능합니다.유태인 특수영양제 M3는 좋은 흙에서 자란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 미네랄이 풍부한 특수영양제로 어떠한 질병에도 탁월한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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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추수감사절 특집 - 美 대통령의 추수감사절 역사 크리스천헤럴드2025.11.16
    11월 네번째 목요일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다. 미국인들은 북미에서 영국 식민지가 만들어진 1주년을 기념해 이날을 국경일로 정해 축하해왔다. 1620년 11월 11일, 청교도로 알려지게 된 102명의 정착민을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북미 해안에 도착했다. 그들은 당시 영국에서 처벌될 수 있는 범죄인 영국 국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기를 거부한 종교적 분리주의자들 중 첫 번째 사람들이었다.영국을 떠나 13년 전에 정착했던 버지니아 식민지 북쪽에 농촌 마을을 세우기로 결정한 그들은 착오로 북쪽으로 거의 1천 km 떨어진 곳에 도착했는데 오늘날 보스턴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매사추세츠 주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플리머스 식민지를 설립했다.북미에서의 그 첫 해는 매우 어려웠는데 ‘왐파노아’ 원주민의 도움으로 굶주리지는 않았지만 첫 두 달 이내에 3분의 2가 목숨을 잃었다.그러나 1621년 가을은 많은 농작물을 거두었고 가을걷이가 끝날 때가 그들의 북미 도착 기념일과 겹치자 그들은 이 날을 축하했다.  살아남은 53명의 정착민들이 이웃인 90여명의 ‘왐파노아’ 원주민들과 함께 야생 가금류, 사슴 그리고 다양한 야채를 들며 잔치를 벌였다.정착민들은 또 자신들이 살아남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진심 어린 기도를 드렸는데 그 것이 첫 Thanksgiving이 된 것이다. 추수감사절은 오랫동안 백악관에서 기념되어 왔지만 , 감사를 표하는 것 외에도 대통령직은 이 명절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오늘날 우리는 11월 넷째 목요일에 추수감사절을 기념하지만, 1941년 이전에는 추수감사절이 달력에 고정된 날짜가 아니라 대통령이 선포할 때마다 기념했다 .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1789년에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선포하여 11월 26일 목요일을 " 미국 국민을 위한 공적 추수감사절 "로 지정했는데 이는 새 헌법에 따라 추수감사절을 처음으로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것이었다.토머스 제퍼슨은 1801년 추수감사절 선언을 거부하면서 이 전통을 지지하기를 거부했다. 제퍼슨에게 추수감사절을 지지하는 것은 국가가 후원하는 종교를 지지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추수감사절은 청교도 종교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었다. 당시 제퍼슨의 정치적 정적이었던 연방주의자들은 정교분리에 대한 그의 입장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여 미국인들에게 그가 무신론자이며 미국을 덜 경건하게 만들고 있다고 설득하려 했다.1801년 11월, 코네티컷의 침례교 단체가 제퍼슨에게 주 헌법이 종교적 자유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그의 대통령 임기 동안 자신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습니다. 이 단체에 보낸 초안 편지 에서 제퍼슨은 연방주의자들의 비난에 대해 금식이나 감사일을 선포하는 것을 종교적 표현으로 간주하며, 그것이 영국의 미국 식민지 지배의 잔재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설명했다.아이러니하게도 제퍼슨은 1779년 버지니아 주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추수감사절과 기도의 날을 선포한 적이 있었다. 훗날 제퍼슨은 주지사 시절에는 그렇게 할 의향이 있었지만, 대통령 시절에는 그러한 명절을 지지하면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배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또한 추수감사절은 연방 정부가 아닌 주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밝혔다.1846년부터 1863년까지, 영향력 있는 『고디의 여인의 책(Godey's Lady's Book)』의 저자이자 편집자인 사라 조세파 헤일(Sarah Josepha Hale)은 의회와 다섯 명의 대통령( 테일러, 필모어, 피어스, 뷰캐넌, 링컨 )에게 추수감사절을 국가적인 연례 공휴일로 지정해 달라고 청원했다. 헤일은 뉴잉글랜드 출신이었는데, 19세기 중반에는 풍년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것이 확립된 전통이 되었다. 마침내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 공휴일로 선포하면서 그녀의 청원이 성공했다. 링컨 대통령은 국가가 상처를 치유하고 " 평화, 조화, 평온, 그리고 연합 "을 회복할 것을 촉구했다.1865년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교회 대표단이 방문하기 전까지 추수감사절 선언문을 발표하는 것을 잊었다고 한다. 그는 12월 첫째 주 목요일 (7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했다. 앤드류 존슨 대통령 이후로 추수감사절은 11월 말에 기념되고 있지만, 그 이전의 대통령들은 다른 달에도 추수감사절을 선포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은 1813년에 9월 9일을 , 1815년에는 3월 16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3년 처음 대통령에 취임했을 당시 , 추수감사절은 아직 고정된 명절이 아니었으며, 대통령이 추수감사절 선언문을 발표하여 그 해 추수감사절 날짜를 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전까지는 매월 마지막 목요일에 추수감사절을 기념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대공황으로 인해 이 전통은 지속되기 어려워 졌다 . 루즈벨트 대통령의 첫 추수감사절은 11월 30일이었는데 목요일이 다섯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재계 지도자들은 통계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수감사절 이후에 쇼핑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추수감사절이 한 주 더 연장되면 중요한 매출 손실을 볼 것을 우려하면서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추수감사절을 한 주 앞당겨 11월 23일 목요일로 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그는 지난 70년간 이어져 온 전통을 따라  마지막 목요일로 유지하기 로 결정했다.2년 후, 루즈벨트 대통령은 11월 마지막 목요일에 추수감사절을 지냈지만, 대중의 분노가 거세지자 의회는 1941년 12월 26일에 11월 넷째 목요일을 법정 공휴일 로 지정하는 법안(77 HJ Res. 41)을 통과시켜 모든 미국인이 통일된 추수감사절을 기념하게 되었다. 1947년,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전국 양계·계란 위원회(Poultry and Egg National Board)가 주최한 최초의 생칠면조 시식회를 주재했고 , 이 행사는 백악관의 연례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1963년부터 1967년까지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린든 B. 존슨 대통령에게 시식된 칠면조들은 목에 "대통령님, 맛있게 드세요"라고 적힌 표지판을 달고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이 칠면조는 그냥 키우도록 두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칠면조를 살려주었지만, 백악관 칠면조를 사면하는 전통은 1863년 링컨 대통령이 칠면조에게 사면을 내린 데서 유래했다. 이는 당시 백악관 기자였던 노아 브룩스가 1865년 보도한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브룩스는 링컨 대통령의 아들 태드가 아버지에게 칠면조를 살려달라고 부탁했다고 언급했다. 태드는 그 칠면조를 애완동물로 입양했다. 링컨 대통령은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에는 이 칠면조를 살려주었지만,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에는 원래 이 칠면조를 사용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1989년 11월 14일이 되어서야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이름 없는 칠면조에게 공식적으로 "대통령 사면"을 내렸는데,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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