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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17 김광근 -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라 크리스천헤럴드2025.12.03
    삶은 때때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 앞에 우리를 세움니다. 세상은 직업, 역할, 성과, 혹은 과거의 상처로 우리를 정의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단순하면서도 결정적인 한 문장으로 우리를 규정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라."사도 바울은 누가 옳으냐는 문제보다 더 본질적인 사실을 상기시컵니다. 바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라는 정체성입니다 이 고백이 마음에 새겨질 때, 우리는 흔들리는 자존감 속에서도 담대해지고, 세상의 소리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고, 그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내 뜻과 내 영광을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주님의 소유로, 주님의 기쁨을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입니다이 진리를 기억하면, 오늘 우리의 작은 선택 하나에도 방향이 생깁니다. "우리의 말이 주님께 영광이 될까?' "우리의 크고 작은 결정들이 주님께 드려질 수 있을까?"하루를 시작하며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살든지 죽든지,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신앙 표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중심을 붙들어 주는 영적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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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류응렬 칼럼 - 보이지 않는 빛을 향해 걷는다 크리스천헤럴드2025.12.03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처음 보았을 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해바라기는 단순히 병 안에 담긴 꽃 그림이 아닙니다. 작가의 힘겨웠던 삶, 햇살, 사랑, 죽음과 자아까지 나타내며 한 사람의 인생 전부를 엿보게 합니다. 이렇듯 예술 작품은 그 자체 보다 그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C.S. 루이스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순전한 기독교'에서 한 말입니다. “나는 해가 떠오르는 것을 믿듯이 기독교를 믿는다. 해를 보기 때문만이 아니라, 해로 인해 모든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은 우리에게 자주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구름 뒤에 숨기도 하고, 새벽에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태양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동녘에 햇살이 떠오르면 온 산천의 색깔이 드러나고, 길 위의 그림자가 태양의 방향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우리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습니다. 공기가 보이지 않아도 우리의 폐를 채우고, 중력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의 발걸음을 붙들고 있습니다. 사랑은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그 보이지 않는 힘이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지키며, 한 인간의 일평생을 흔들어 놓습니다. 조용한 새벽에 깨어나 홀로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다 보면 문득 보이지 않게 내 삶을 이끌어 온 많은 것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끝까지 신뢰했던 이유,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을 용서하게 했던 힘, 낙심 중에도 이상할 정도로 다시 일어서게 했던 용기. 이 모든 것은 어떤 형태도 색채도 없지만 그 무엇보다 거대한 울림으로 우리 삶을 움직여 왔습니다.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주님의 빛 앞에서 수없이 그분의 존재를 깨닫습니다. 평범하게 읽던 말씀이 어느 날 내 마음을 흔들고 들어오는 순간, 기도 중 이유 없이 차오르던 눈물, 절망의 골짜기에서 갑자기 길이 열리던 경험. 이 모든 것은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니라 나의 삶을 비추는 빛입니다. 시편 기자도 이 사실을 고백합니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 36:9).” 바울도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다고 강조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에서 성경의 가르침도 루이스의 말도 우리를 향한 조용한 초대처럼 들립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살지 말라. 세상을 비추는 빛을 보라.” 아름다운 가을날에 우리 손을 붙들고 계시는 주님을 마음에 깊이 모시면 좋겠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나뭇잎이 흔들릴 때 바람이 지나가듯이 조용히 주님의 이름을 불러보면 남모를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환경을 뛰어넘는 힘을 얻고 소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사람은 내 안에 진정한 빛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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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정재영 칼럼 - 교회가 아닌 마을 중심의 돌봄 실천 크리스천헤럴드2025.12.03
    최근 돌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반드시 누군가에게 돌봄을 주고, 돌봄을 받는 시기를 거친다.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고 누군가를 돌보는, 돌봄 관계의 변화 속에서 우리 삶은 구성된다. 이렇게 인간의 삶에서 돌봄은 필수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 존재 자체를 ‘돌봄의 인간’으로 상정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 중이고, 노인이나 만성질환자, 장애인 등 돌봄이 필요한 인구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돌봄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돌봄이 사회윤리, 정의의 기초가 돼야 하고,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가 재구성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도 ‘돌봄 사회’로 이해된다. 돌봄 사회는 돌봄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이며, 동시에 돌봄 관계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다. 여기에는 돌봄 관계가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가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만약 돌봄이 배제된다면 자유민주주의든 사회민주주의든 전부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돌봄이 기초가 되는 돌봄 민주주의가 강조되고, 복지국가를 넘어 돌봄 민주국가가 돼야 한다고 주장된다. 이런 점에서 돌봄 민주 국가는 새로운 모습의 복지국가이며, 돌봄의 가치와 돌봄 관계를 지원하고 반영하는 국가로서 더 정의로운 복지국가, 더 나은 복지국가로 불리게 된다.이렇게 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에서도 ‘통합돌봄지원법’이 내년에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의 목적은, 기존에 분절되어 제공되던 의료·요양·돌봄·주거·재활·생활지원 등의 서비스들을 통합·연계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살던 곳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이 법은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겠다기보다는, 기존에 흩어져 있던 서비스를 ‘사람 중심’으로 재설계하고, 통합된 전달체계를 만들겠다는 ‘체계적인 틀’을 제공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기존에는 의료, 요양, 복지, 주거지원 등이 제각각 따로 운영됐다. 그래서 서비스 간 단절이 많아서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21세기교회연구소와 한국교회탐구센터, 목회데이터연구소가 공동으로 한국 개신교 신자들의 마을 돌봄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교회와 신자가 마을 돌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어느 정도 참여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조사를 통해 지역사회 활동과 돌봄 관련 경험 및 향후 필요 요인을 파악함으로써, 교회 기반의 마을 돌봄 모델을 설계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교회가 공적 돌봄 체계와 협력해 마을 돌봄 사역 주체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돌봄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뚜렷했다. 출석교회 생활환경이 ‘열악’하다는 응답은 읍·면 지역에서 더 높았으나 실제 돌봄 사역은 ‘읍‧면’보다 ‘중소도시·대도시’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읍‧면 교회는 돌봄 체계 또한 취약해 돌봄 조직·예산·협력 구조 구축률이 가장 낮고, 돌봄 사역 준비 또한 갖추지 못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곧 돌봄이 가장 필요한 지역이 돌봄 활동을 가장 덜 하고 있으며 가장 준비가 미비한 구조였다. 돌봄이 필요한 지역인 읍·면 교회들은 대부분 소형교회로서 재정·인력·환경의 한계가 클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들이 한계를 극복하고 돌봄 사역에 나설 수 있도록 지역교회들 그리고 도시 교회들과의 연합 활동이 필요하다.주목할 점은 자원이 부족한 소형교회의 분투다. 30명 미만의 소형교회 55%도 마을 돌봄 사역을 실천하고 있었다. 돌봄 예산·조직·체계가 전혀 없는 교회만 따로 보아도 그 중 50%는 필요 시 팀을 모아 비정기적으로 돌봄을 수행하고 있다. 나머지 50%도 ‘완전 비공식적으로’ 즉 체계 없이 자기 힘으로 수행하고 있었는데, 특히 이 비공식 수행 비율은 소형·읍/면 교회일수록 더 높았다. 그런데 소형교회는 지속가능성과 발전 여력이 부족하므로, 현재 돌봄을 감당하고 있는 소형교회에 대해 중대형교회들의 재정·물적 지원이 요구된다. 중대형 교회의 재정·물적 자원과 소형교회의 지역사회 정보력·현장 접근성을 결합하여, 함께 하는 돌봄 사역의 연대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교회들의 돌봄 사역 방식에 대한 인식 변화도 나타났다. 마을 돌봄 실행 방식 선호에서 협력 선호 76%, 교회 단독 14%로 압도적 차이를 보인 것이다. 돌봄통합지원법체계 내 역할 인식도 ‘필요 시 부분 참여’ 63%가 우세하여 사회적 돌봄을 교회가 단독으로 실천하는 방식보다는 연계 방식을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독자적으로 돌봄 사역을 감당하기 어려운 중소형교회들을 위해 실행 가능한 협력형 모델 제시가 필요하다. 지자체·복지기관·NGO 등과 연계 가능한 표준 매뉴얼과 우수 사례를 수집·공유하여, 교회가 무리 없이 협력 사역에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그런데 이번 조사에서는 마을 돌봄에 대한 교회 중심의 사고가 강하게 드러났다. 마을 돌봄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 가장 높은 항목은 ‘지역사회 신뢰 획득’ 45%로 ‘돌봄이 필요한 이웃의 삶의 질 향상’(37%)보다 더 높았다. 곧 수요자보다 교회 쪽 이익을 더 먼저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돌봄과 교회 성장의 관계에서도 ‘돌봄이 성장에 직간접으로 기여’한다는 인식이 91%로 나타난 것도 돌봄 사역이 수요자 중심보다는 교회의 이미지 향상이나 성장 수단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돌봄 교육과 설교, 훈련에서는 ‘교회에 유익한 돌봄’이 아니라 ‘이웃 사랑’에 초점을 둬야 한다. 따라서 관점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또한 돌봄 대상 주요 연령대는 노년, 돌봄 대상 부류는 독거노인, 주요 돌봄 활동은 빈곤층 돕기가 가장 높게 나왔다. 마을 돌봄을 취약층 중심으로 생각하고 전통적인 구제/봉사 활동으로 보는 시각이 나타나는 것이다. 돌봄의 대상은 지역사회의 모든 주민이 될 수 있고, GDP 3만 불이 넘는 시대에 전통적인 취약계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육체적 돌봄뿐만 아니라 정신적 돌봄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관심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회의 한정된 자원을 지역 사회에 베푸는 시혜적 방식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자원들이 교회를 통해서 연결되고 협력 활동이 이뤄짐으로써 마을을 공동체화 하는데 교회가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이번 조사에서는 한국교회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해 ‘예배·교육’ 486% 다음으로 ‘마을 돌봄’이 32%로 2위로 나타났다. 특히 시민의식이 높을수록 돌봄을 위기 해법으로 보았고, 생활환경 열악 지역 성도일수록 돌봄을 위기 극복 방법으로 선택했다. 이것은 돌봄을 ‘사회봉사’가 아니라 교회 신뢰 회복과 사회 신뢰도 회복, 현재의 교회 위기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인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을 돌봄을 단순히 교회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진정성 있게 마을 돌봄을 실천할 때 결과적으로 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신뢰를 얻는 종교 단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돌봄을 교회가 감당해야 할 마땅한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이해하고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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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철영 칼럼 - 우리 아이들, 스마트폰 과의존에서 벗어나게 해야 크리스천헤럴드2025.12.03
    AI시대가 도래했다. 제4차산업혁명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모든 문제를 챗GPT 등에 물어본다. 심지어는 수도권 유명 대학들 중간고사에서 AI를 활용해 답안을 작성한 것이 드러나 문제가 되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과다하게 의존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문제는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이다. 여성가족부(성평등가족부로 개칭됨)가 지난 5월 여성가족부(성평등가족부) 여성가족부는 5월 18일 전국 학령 전환기 청소년(초 4학년, 중 1학년, 고 1학년)과 보호자(초 1학년) 147만여 명이 참여한 「2025년 청소년 미디어 이용습관 진단조사」(이하 ‘진단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그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인터넷·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청소년(초4, 중1, 고1)은 ’25년 213,243명으로 파악됐다. ’24년 221,029명에 비해서는 조금 낮아진 숫자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몰입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청소년을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라고 한다. ‘과의존 위험군’은 위험사용자군과 주의사용자군을 총칭하는 용어로 ‘위험사용자군’은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전문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수준을 말한다. 그리고 ‘주의사용자군’은 사용 시간이 늘어나 자기조절에 어려움이 있어 주의가 필요한 수준을 의미한다.그 조사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 두 가지 문제를 모두 갖고 있는 중복위험군청소년은 78,943명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중복위험군’이란 인터넷 과의존 위험군이면서 스마트폰도 과의존 위험군인 청소년을 말한다.학년별 과의존 위험군 수는 중학생(85,487명), 고등학생(70,527명), 초등학생(57,229명) 순으로 많았다. 과의존 위험군 남자 청소년은 116,414명, 여자 청소년은 96,829명으로 남자 청소년이 여자 청소년보다 많았다. 특히 초등 1학년의 스마트폰 이용 습관은 보호자가 참여하는 관찰조사로 진행한 결과 정해진 이용 시간을 준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시력·자세 등에 안 좋은 영향이 있는 등 사용 지도가 필요한 수준을 의미하는 ‘스마트폰 과의존 관심군’은 총 13,211명으로 파악됐다.여성가족부는 미디어 과의존의 위험에 노출된 청소년에 대하여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청소년상담기관과 연계하여 미디어 과의존 정도에 따라 상담, 병원치료,치유프로그램, 부모 교육 등 맞춤형 치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집중 치유가 필요한 청소년은 미디어 사용이 제한된 환경에서 전문상담과 다양한 대안 활동 등을 제공하는 기숙형 치유캠프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지난 2013년 11월 세계성시화운동본부와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여야 기독국회의원들과 함께 ‘중독 없는 대한민국 만들기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조사 자료에 의하면 인터넷과 스마트폰 과다 이용으로 인한 학습기회 손실비용은 무려 1조5천억 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학습능력 상실은 물론 불안장애, 학폭, 왕따, 불안장애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고 했다.갈수록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용률이 높아져가고 있는 시대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 자녀들을 기도와 말씀으로 양육하고, 올바른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용 방법을 교육해야 한다. 하나님보다 집착하고 사랑하는 것은 우상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전자 기기를 선교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AI선교사로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마침, 콘텐츠문화연구소 ‘웨이커스’와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칼빈대학교, 한동대 VIS센터가 공동으로 내년 2월 3일부터 5일까지 안산동산교회 대부도 엔케렘수양관에서 한국교회 최초로 ‘제8회 청소년 AI 드림캠프’를 개최한다. 청소년들이 AI를 활용해 복음의 전령사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한국 교회가 적극 지원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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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이효상 컬럼 - 살다보니 사람이 보이네 크리스천헤럴드2025.12.03
    살다보니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젊었을 때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높은 자리에 감탄하기도 하고, 많은 가진 재산을 과시하는 모습에 부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쌓이면서 알게 된다. 사람을 가르는 건 그가 지닌 마음의 무게와 삶의 태도라는 것을.살다보니 알겠더라. 인간관계도 어느 순간이더라. 살다보니 생각도 깊어지고 보이는 게 많아졌다. 영원한 인연도 없고, 영원한 사람도 없고, 영원한 아픔도 없다. 떠날 사람은 억지로 잡아도 떠나고, 남을 사람은 애쓰지 않아도 남는다. 바람이 불면 지나 갈 것은 바람따라 사라지고, 바위처럼 남을 것은 남아 있다.살다보니 사람이 다르게 보인다. 특히 눈앞에 이익만 쫒는 욕심많은 사람, 기본적인 약속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은 결국 갈등만 생기고 오래가지는 못하더라. 타인을 이용하기 위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만 결국 주위에서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잔머리로 사람을 이용하기 위해 상황 따라 말을 바꾸고,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헌신짝처럼 여기며 자신의 잔꾀를 믿고 살아가는 3류 야바위꾼처럼 행동하는 이도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은 의외로 단순해서, 진실을 향한 감각만큼은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응기응변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은 희망을 잃는다. 순간은 모면할지 몰라도 결국 신뢰를 잃고, 신뢰 없는 삶은 마른 땅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살다보니 인간관계도 달라진다. 인간관계가 많고 바쁜 것이 결코 행복도 아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끊어진다. 가까이 지내던 지인도 이사 가면 잊혀지고, 직장에서 만난 이도 퇴직하면 멀어진다. 돈으로 엮였던 관계는 이익에 따라 사라진다. 사람을 잃기도 하고, 배신을 당해보기도 하면서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단정하면 안 되겠다 다짐하게 된다. 살다보니 사람을 대할 때 외면이 아니라 내면을 보게 된다. 사람은 겉모습이 아니라 그가 쌓아온 시간, 살아내는 삶의 진솔한 태도나 말이 아닌 행동에서, 웃음 뒤에 숨겨진 고독함에서, 말 한마디 손길 하나에 담긴 진심에서 그 사람의 삶이 읽혀진다. 참 괜찮은 사람, 참 고마운 사람,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한 사람, 오래도록 함께 해주고 싶은 사람, 미치도록 보고 싶은 사람 등 이런 사람 한명쯤은 있어야 살맛나는 인생이더라. 살다보니 사람의 깊이가 보인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도 형편에 따라 가지각색이기에 그 마음이 읽혀진다. 타인의 외로움 역시 그렇다. 짝이 없어 혼자 사는 것도 서럽겠지만, 함께 있음에도 정을 나누지 못하고 서로의 마음 문을 닫아버린 삶은 그보다 더 괴로운 일이다. 함께 있음이 우연이나 웬수가 아닌 서로에게 축복이 되게 해야 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그 사람과 같이, 그의 편이 되어 거창하지 않고 차 한 잔 앞에 두고 소소한 웃음을 나눌 수 있음에 행복하다는 것을 알겠더라. 5년이 지나고 10년이 되어도 변함없이 지지하고 응원해주며 동행해주는 사람 말이다. 결국 삶은 그런 사람으로 채워지고, 사람을 통해 아픔은 비워진다. 조금 부족해도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없도록, 조금 모자라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없도록, 조금 서운해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따라, 시간이 지남에도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모습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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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칼럼] 어 혈 크리스천헤럴드2025.12.03
    잔디에 물을 주거나 세차를 할 때,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하면  멀리까지 물을 뿌릴 수 있지만 호스 중간중간이 꼬히거나 막히면  물을 제대로 공급할 수 없는 것 같이 우리 몸의 혈액 순환도 이와 같습니다. 심장에서 생성된 건강한 혈액을 몸 전체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호스와 막히지 않은 혈관이 필요합니다. 미국에서 1분에 1명씩 목숨을 잃고 있다는 심혈관 및 뇌혈관과  관련된 허혈성 심장질환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인 관상동맥이 좁아져서 혈액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므로 발생하는 질환으로써 협심증·심근경색증과 같은 돌연사의 주범이며 매우 치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혈액은 영양소와 노폐물, 가스, 호르몬 등을 온 몸으로 전달하는데, 혈액이 원활하게 흐르지 않으면 각 장기에 영양분이 골고루 전달되지 못하므로 신체 조직이나 기관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 중풍, 고혈압, 동맥경화, 뇌졸증, 심장병, 당뇨병 등의 질환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의학에서는 혈액순환을 개선하기 위하여 약으로 혈관을 확장하고, 심하면 혈관의 막힌 부분을 자르거나 이어붙이는 방법을 이용하고, 한의학에서는 혈액 속의 어혈(瘀血)을 제거하지 않으면 혈관이 언제 막힐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혈제거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어혈이 생기는 것은 고기나 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해 혈액 속에 기름기가 많아지거나 운동 부족으로 신진대사 기능은 약해졌는데도 당분과 지방이 많은 식사를 하는 경우에 생기는데 특히 폐경기 여성은 호르몬 분비는 현저히 줄고 콜레스테롤 수치는 높아져서 어혈이 생기도 합니다. 어혈제거와 혈액순환방법으로 뭉친 혈액을 뽑아내는 사혈요법과 혀 밑에 있는 ‘금진’과 ‘옥액’이라는 두 혈자리에 침을 놓아서 어혈을 제거한다는 금진옥액요법과 녹용, 사향, 산수유, 당귀 등으로 만든 ‘환약’과 ‘공진단’을 복용하는 어혈제거 방법도 있습니다. 자가진단 방법으로 △온 몸이 무겁고 쉽게 피로를 느낀다 △뒷목이 뻐근하고 묵직하다 △머리가 무겁거나 지속적으로 두통을 느낀다 △가슴이 답답하고 심하게 두근거린다 △손발이 저리거나 자주 뻣뻣해진다 △손발이 차다 △몸에 담이 자주 걸리고 쥐가 난다 △근육이나 관절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피부가 거칠어지고 기미가 늘어난다 △잠을 푹 자도 눈 밑에 푸른 색, 심하면 검은 색 다크서클이 생긴다 △피부에 실핏줄이 잘 터지거나 쉽게 멍이 든다 △여성의 경우 생리혈에 덩어리가 많다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거나 생리통이 심하다 등의 증상을 느끼면 혈액순환 장애 현상이니 더 늦기 전에 해결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지에 대해서는 잠시 성경말씀을 살펴본 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출애굽기 12장15절로, 11.너희는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16.너희에게 첫날에도 성회요 제 칠일에도 성회가 되리니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인의 식물만 너희가 갖출 것이니라 17.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를 삼아 이 날을 대대로 지킬찌니라 18.정월에 그 달 십사일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19. 칠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니 위의 내용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기 직전에 애굽에 있는 모든 짐승이든지 사람이든지 첫 번째가 되는 장자들이 죽는 재앙이 있었는데, 오직 이스라엘 민족만을 재앙에서 구원해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을 유월절이라 하고, 그 다음 날인1월 15일부터 7일간 무교절이라고 해서 누룩을 넣지않은 빵을 먹고, 누룩 자체를 집에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누룩이란 조금만 넣어도 밀가루를 크게 부풀게 만드는 재료로서 죄악을 상징하는 말이고, 7일동안만 무교절을 지내는 것은 매주 7일동안이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반복이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5장6절로, 6.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8.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아모스 4장5절, 5.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광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수은제와 낙헌제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제사방법으로서 죄악의 의미인/누룩을 넣은 제물을 제사장에게 드려서 불살라 버리고/잔치를 즐기는 일종의 화목제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행동만을 하려고 노력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럼 다시 어떻게 하는 것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만병의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인스턴트 음식과 열량이 높은 음식은 피해야 합니다. 운동을 한다해도 고지혈증이나 관상동맥질환, 뇌졸증 등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혈이 생기는 것을 막고 맑은 혈액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좋은 흙에서 나온 식물성 영양제를 드시는 겁니다.유태인 특수영양제 M3는 좋은 흙에서 자란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 미네랄이 풍부한 특수영양제로 어떠한 질병에도 탁월한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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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제 11 회 신앙도서 독후감 우수상 - 왜 칼인가 | 매일 죽고 새롭게 사는 삶 크리스천헤럴드2025.12.03
    왜 믿음인가? 라는 책을 읽다. 책이 방금 내게 묻고 있다  오래 쓴 칼날같은 질문이 망연한 머릿속으로 피가 밴듯,  통증이 느껴진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어찌하여 독자가 차갑고 무례하게 느낄 제목으로 책을  썼는가 그럼에도 네게는 알아 볼 일이 되었다. 혹 나를 위한  글인가  내심 연결고리를 만들어 본다  왜 이 질문이 필요한가 진주 목걸이를 만들려면 먼저 진주구슬을 꿰야한다는 사실에 기초한  내게는 책읽는 기술인 셈이다.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되어서 그 상황속에 빠지게 되면  감독이 목적한 감동을 온전히 기억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는 셈법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사람이 본다고 하여 다 보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직접 또는 간접 경험이 없고서야  수긍되기 어렵지 않는가 함으로 무례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지닌 경력에서 갖게 되는 호감도 무시하지 못함은 언론 분야에 경력이 글의 추직력을 갖는  배열로 조목조목 고민한 흔적들을 볼 수 있게 하고 오래 생각하지 못하는 나는 읽는 동안 글에 친근함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습관처럼  있었더란다라는 점이다  그 시간적으로 배열된 내용은믿음의 조상부터시작해 다시 오실 주님의 말씀까지  글의 주제를 형성하기 위해 무엇이 믿음인가 어떻게 믿는가   그리고 매일 죽고 새롭게 사는 삶의 목적에 대하여 거대한 시간과 공간을  생활 언어로 정제되어 서술하고 있었다. 믿음의 그루터기 선배들의 발자취와 사람들의 질문과 저자의 경험이 독자에게  이해하기 쉬운 바탕으로 이루어져  성경 66 권이 시대를 관통하여 흐르는 물이 고였다 모였다 다시 갈라져 흐르는 흐름을 깨닫지 못해도 비교적 쉽게 읽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겠다.  다양한  현실적 고민들은  일반 성도의 신학적으로 어려운 접근을 배제한 배려함이 보여졌다고 하겠다. 그러하니 독자가   어떻게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눈 높이에 이르는 믿음의 여정을 여행하게 도움이 되었고 해설자의 조목조목 재미까지 덧입혀 씌여져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으로 믿음의 대상이 보이지 않는 존재요 믿음의 주체가 주는 믿음으로 육체된 생명을 버린  믿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내 믿음을 가지고 이 시대를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강한 부정적 성찰에서는 좁은 문이 더 좁아지는 문같이 느껴졌지만 이것은 의심과 다른 것이다.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복음 전도의 본질적 사명이 시대적 혼란을 원인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함축된 염려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숙시키는 외부 조건을 탓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마치 낙원의 사건처럼   수 천년 동안 시대를 구분하여  선지자들을 통해 전해진 말씀에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찾아내는 관점이 흥미로웠다.  구체적으로 창세기에서 실패한 믿음의 원인이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뜻이 드러나고 예수님의 사역(믿음의 행위)의 시작도 끝도 믿음으로 라고 서술한 내용에는 믿음은 단순하게 내 감정의  중심인 씨앗이 싹뜨는 비유가  아닌  회개와 거듭남 그리고 행위로 이어져야 바르고 참 믿음의 여정에 이른다 라고 하는 점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게 하려 함에 예수님의  믿음이 근거했다(요 19:28-30)는 내용은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에 대한 믿음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에 이르는 되었음을 더 이해하게 된 유익이었다.  단순히 성경의 이야기만 읽는 문해력을 가진 사람들조차  혼란한 시대의 특징을 생활주변에서 매일 언론 등 뉴스로 견줄  수 있게 된다.무엇보다 세상이 빠르게  물질의 풍요로 사람들의 욕구에 부응하며  더 나은 소비적 삶을 추구하며 사람의 가치와 물건의 가격이  세대간의 격차 속도에 기여하고 있는 지금 자기과시 시대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시대의 통찰은 누구나 하지만 성경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기회가 유익하고  왜 속도에 놀라는가  얼마나빠르게  어느 방향으로움직이는지까지나타내는속도는, 출근 차들, 바다를 건너는 비행기, 지구를 관찰하는 우주에 떠있는 기구들, 고쳐 쓰는  사람이 유효한 이 땅위에서 시간을 돈으로 진화 된 증거를 보여주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시대적 아픔을 포옹할  것인가 라는 문제 제기에 우린 생명을 지켜내야 한다는 거룩한 일을 기억하게 하였다. 또 우리 하나님의 시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는 믿음에 관련하여 성경의 기록된 어떤 삶에서 찾아내는 놀라운 관점을 지닌 듯 하다. 삶이 어느 때나 어느 곳에나 발가락을 옴질거리는 생명이  정해진 죽음에 이르는 여정이라면 하나님이 제일 먼저 통곡할 일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정해진 죽음 앞에서 말씀에 반응한 그들의 행위가 주의 심정에 연민이 되는 사건, 역사가 되는 믿음은 은혜위에 기초한 것음을 알 수 있다. 죽은 자 가운데 살리는 자 곧 산 자, 생명이 믿음이 원인이 된 것이다. 왜 실패한 믿음이 자존심인가 그가 또 속삭이듯 말한다 사실은 진짜 믿음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아니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칭찬을 받는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하여 사실을 뒤집는 믿음을 조명하기도 한다 믿음에 대한 불안 때문에 니고데모처럼 은밀히 주님을 찾아가고 싶은 분들, 혹시 나의 왜곡된 믿음으로 다른 사람의 눈에 든 티를 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분들에게도  이 책이 도움되기를 바란다 하시니 내게도 해당되는 공범이 되버린다. 창세기의 페이지들이 바람처럼 휘리릭 초원이 되어 내 앞에펼쳐진다 태초에 나를 지으신 이가 살라고 코에 불어넣은 생기는 생령이 된 지라 지금 내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콧바람은  누구든 내 옆구리 위치가 아니고서야 숨기운을 감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내 안에 숨긴 호흡은 근원을 증거하는 것이다  나를 지은신 존재가 보이지 않는, 볼 수 없는, 보게 하시는 모든 지각에 뛰어남을 인정하는 과정은  다른 사람과 같은 듯 같지 않고 같은 것임이 혼재 됨을 염려하는 전체 흐름이 감지되지만 작가의 무뚝뚝한  사랑이 표현이 아닌가 생각하기로 한다 혼란에 시대에 부모의 근심은  어린 자식에 관한 것이며 심지어 태어난 곳을 떠나온 우리네 부모는 수가 높아도 정신이 맑은 날이면 물갓에 있는 자식안부을 묻는다.   자식에게 짐이 될까 혼자 살기를 염원하시는  노모는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판단을 잘못하시는 것 사회적 보호시설에 거주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권유할라치면 자신이 버림받을만큼 산 것에 수치감과 쓸쓸함을 견듸지 못하신다 어느 날  내게 보내온 메세지를 보고 한 낱말이 가슴을 쳤다  그 메세지는 누구도 읽을 수 없는 기호였던 것 으로 그녀는 소지한 전화기 글자판에 기호들의 조합을  의미로 만들지 못한 채로 보내진 것이었다 문자 기호 버튼을 손가락으로누르는 어머니를그려 본다 영화 화면처럼 희어져 헝클어진 긴 머리채와 여름 긴팔 흰 셔츠를 핏줄이 또렷한 팔에 걷어 올려 두고 녹색물이 바랜 헐렁한 면바지을 입고 침상에 앉아 계신다 병원 옷은 같은 면이지만 뻣뻣하기가 막되먹은 사람같아서 촉감이 싫다고 하셨다 스치듯 소상한 추억을 기억함은 왠지 나를 슬프게 만든다. 잔 물결이 덮인 얼굴에 검은 얼룩 자국이 듬성거리고  가느다라진 힘없는  손가락 손톱 밑이 거뭇해져 있다.  내 죄를 어찌할까요 하나님  몸을 엎드리고 얼굴을 땅에 대었다호숫가를 한 나절을  이 울음으로 혼자 걸었다.그리고 보낸 기호를 읽었다 ‘잘 지내는냐’ 였다  나는 기록했다 어머니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니도 잘 지내고 계십시오 언제나 사랑이신 어머니 앞에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예수님도 어머니와 같다고 나는 견준다. 그들은 영원한 사랑을, 자기를 부인한 사랑을 붓는 것이다  이것은 불안한 믿음이 될 수 있을까 혹시 왜곡된 믿음으로 남의 눈에 든 티를 뺄 수 있을런지 시비가 되거나 선택의 고민은 하지 않는다. 차라리 주의 은혜위에 어머니의 은혜라고 해야할 증거있는 양심이 아닐까싶다.  어머니는 자식을 키워 준 친정어머니를 배신할 수 없어 그녀의 종교에 경의를 가지고 살지만 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는 딸인 내가 가장 이해가 빠르다고 좋아하신다  “너는 왜 잠 안자고 책을 보니?” “좋아서요.” 좋아하시는 창 16 장 대목 읽어드릴까요? 주무시면 안되욤 “그년도 고생많이 했느니, 아들 나서 호강할 줄 알았나”.  중얼거림이 끊기며 금새 조용해진다.  호흡을 세시는 나의 하나님의 위로다.   잠들지 않으려는 어린 자는 세상에 어리숙하지만 가시도 밍크처럼 부드러운 어미된 자에게는 산 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의 사랑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변화의 바람에 따라 성장한 자손이 성숙한 자손에 이르기까지  사랑이 축적된 잃어버리지 않는 자아와 생명이며 빛이며 말씀인 예수의 사랑이 멈추지도 않았고 변함도 없었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한가    말씀은 전설이나 신화의기록과  견줄수 없는 능력이 있다. 믿음은산 자만이 갖는 것이다. 산, 큰 산위에서떠드는 헛된 것에  기댄 인생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있는자가 선택한다면 주님은 오실 것이다. 다윗이 싸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사건에서 우리는 믿음의 현장에서 블레셋의 군대처럼 칼과 창 그리고 단창으로 전쟁에 임하지 않는다. 억지로 믿게 할 수는 없다.억지는 하나님의 창조성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너무 바빠 복음을 보지 않는다.복음의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는 사람,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 아니요(엡 6:12)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고후 10:4)  세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  그들이 들은 바 그 내용의 사실을 분별하는지 대답하기를 바랬다 그들은 매우 짧고 간단하게 답했다 녜, 아니오 였다.법정에서 증거력있게 증명하기 위한 증인의 대답이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인 한 사람에게  묻는다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동트기 이른 시간 닭이 울 때 울었던 기억으로 그가 대답한다.  “주님이 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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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제 11 회 신앙도서 독후감 공모 심사평 크리스천헤럴드2025.12.03
    | 우수상 | 이예지 (알칸사)  일화일언 어미선 (인도) 왜 믿음인가? 심제인 (텍사스)  왜 믿음인가? | 장려상 | 김선우 (텍사스)  왜 믿음인가? 김혜숙 (캘리포니아) 틈입하는 하나님 이카라 (캘리포니아) 일화일언 김영준 (캘리포니아) 왜 믿음인가? 이훈구 (텍사스) 믿음 서바이블  | 특별상 | 강지은 (하와이) 왜 믿음인가? 제 11 회 독후감 최종심에 오른 독후감은 모두 16 작품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독후감 공모가 끝나고 독후감 원고를 받아 심사를 위해 읽는 그 순간은 가슴 벅차다. 같은 책을 읽는 독자의 생각과 판단, 시각이 다름에도 객관적인 목표와 감동이 그리스도 안으로 모아지기 때문이다. 그 삶을 함께 나누는 행복이 크고 넓다.   올 해 독후감 특이점은 글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을 뿐 아니라 글의 내용이 문학적 영향권 아래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심사가 길어지고 수상범위가 조정되어야 하는 즐거운 맛도 있다. 조금만 다듬고 길을 내면 작가로 대성할 글 맵시가 곳곳에 스며 있다. 게다가 독후감 공모 11 년 역사 중 최초로 고등학생(11 학년)이 응모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도 또렷한 한국어로 문장을 다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독후감 공모의 영역이 확장되고 넓혀지고 있다는 것은 참 좋은 느낌이다. 또 하나의 최초 기록은 텍사스에서 응모한 이훈구는 <믿음 서바이블> <왜 믿음인가?> 두 편의 책을 읽고 공모하였다.   제 11 회 독후감 공모에 추천도서는 총 다섯 권이었다. 그중 일화일언(3 명), 왜 믿음인가?(8 명), 믿음 서바이블(3 명), 틈입하는 하나님(2 명)이 최종심에 올랐다. 크리스천 에센셜 독후감이 최종심에 없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독후감 수상 범위에 들어있는 작품을 구분하는데 애를 먹었다. 독후감의 질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글의 짜임새가 문학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세 작품을 공동 우수상으로 선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화일언>을 읽은 이예지 (알칸사) 의 독후감은 단순한 감상문이 아니라 산문형태의 신앙의 성찰을 이끄는 묵상문 형식이다. 과거의 이야기들을 단순 “옛 기록”으로 두지 않고 오늘을 비추는 믿음의 거울로 유추하고 있다. 책의 내용 중에서 가장 감동 깊은 내용을 끌어내어 신앙적 통찰로 엮어가는 글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곧 이예지의 삶의 고백이기도 하다. 게다가 결단에 이르기 까지 조화를 이루고 결국 믿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것을 예시하고 있다.   <왜 믿음인가?>를 읽은 어미선 (인도) 은 이미 문학의 길로 들어선 시인이자 선교사이다. 시적 감수성이 독후감 글자 하나하나에 신앙의 감정으로 녹아 있다. 믿음의 본질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다. 독후감의 형식에도 부합하면서 자신의 실제 사역의 현장(인도 선교지)과 영적 위기(시어머니의 임종) 속에서 믿음의 실체를 책을 통해 성찰한 점이 탁월하다. 사역의 성공이 아닌 진심으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려는 구도자의 심정으로 오늘날 잃어버린 참 믿음에 대한 예언자적 성격이 짙은 작품이다.   <왜 믿음인가?>를 읽은 심제인 Jane Shim (텍사스) 의 독후감은 신앙적 사색과 문학적 내면의 정서가 결합된 수준 높은 에세이형 독후감이다. 서두에 책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구조로 재 구성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그 길에서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서도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체험적 동의와 내적 공감으로 이어가고 있다. 글의 중심 주제가 믿음이란 회개와 거듭남, 행위로 이어지는 전인적 순종이라는 점이 “어머니의 삶과 사랑”에서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Jane Shim 의 독후감은 서정적  비유와 감정의 진폭이 풍부하며, 한 문장 한 문장 간격과 공간이 믿음의 울림으로 가득하다.   장려상은 독후감 공지의 수상 범위 보다 두 작품을 더해 다섯 작품을 선정하는데 이의가 없었다.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수상 작품의 질적 우위가 상승했다는 증거이다. 장려상은 수상의 범위를 구분하는 것이지 우수상을 포함해 독후감 당선작이라는 표현이 더 값진 이름이다.   <왜 믿음인가?>를 읽은 김선우 (텍사스)는 목회자의 입장에서 믿음이라는 주제를 신앙의 현실과 깊이 맛대어 해석한 신앙 수필적 작품에 가깝다. 글의 문체는 정직하고 고백적이며 논리 전개는 일관되고 차분하다. 특히 “믿음의 방향, 예배의 본질, 기쁨의 회복, 교회를 세우는 믿음”이라는 네 축을 중심으로, 조정민 목사의 메시지를 자신의 목회적 경험과 성찰로 녹여내어 표현한 점을 높이 샀다. 단지 경험의 실제적인 묘사가 약화된 것이 흠이 되었다.    <틈입하시는 하나님>을 읽은 김혜숙 (캘리포니아) 은 ‘하나님의 개입’을 두려움이 아닌 감사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새롭게 관찰하게 된 은혜의 고백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 애쓰는 인간의 연약함과 그 속에 스며드는 하나님의 자비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책 내용의 전개를 통해 경험된 연결점이 부족한 것이 약점이 되었다.   <일화일언>을 읽은 이카라 Cara Young Lee (캘리포니아) 의 글은 전형적인 독후감 작성 형식에 따른 모범 작품이다. 책을 접하게 된 동기, 책 내용의 집약, 저자에 대한 정보,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의 선택, 그 교훈들을 성경 말씀과 개인의 삶의 경험으로 연결해서 신앙인의 삶에 대한 보편적인 권고, 당부의 말까지 연결하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의 실제적 경험이 추상화 되지 않고 현실적이었다면, 더 깊은 감동이 전달되었을 텐데, 작은 점 하나 그리는 아쉬움이다.    <왜 믿음인가?>를 읽은 김영준 (캘리포니아)의 독후감은 도입부가 신선했다. 문학적인 정서가 되돌아오는 경험으로 시작된 글의 흐름을 삶의 역동적인 여정 속에 글의 중심 내용을 접목시켜 믿음의 본질을 유추하는 시선이 빛나고 있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문학의 길이 아직도 흐리지 않게 보이는 것이 희망적이다. 단지 흠결을 찾으라면 책의 전체 개요가 선명하지 않은 것이다.         독후감 추천 도서 중 두 편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응모한 경우는 이훈구(텍사스)가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중 <믿음 서바이블>을 읽은 독후감이 선정되었다. <믿음 서바이블>은 저자 김신구 목사의 자전적 간증문 형식의 글이다. 심사를 하면서 주의 깊게 관찰한 것은 책의 내용과 평신도의 관계성을 어떻게 적용으로 관계하는 연결성 문제였다. 그런데 책의 구조를 한눈으로 살필 수 있도록 조정한 것과 동역자의 관계로 세워가는 결단이 안정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감정선이 추상적으로 흐른 것이 약점이 되었다.    <특별상>은 독후감 공모가 시작된 이래로 처음 수상하는 상이다. 특별상의 주인공은 하와이에 거주하는 강지은 학생(11 학년)이다. 이번 특별상은 독후감 공모의 확장성을 의미한다. 고등학생 강지은은 미국 버지니아에서 목회자의 딸로 태어났다. <믿음 서바이블>을 읽고 독후감에 응모했다. 마지막 고백에 가슴이 뛴다. “김신구 목사님께서 이렇게 살아있는 간증집(믿음 서바이블)을 쓰셨듯이 제가 어른이 되고 나이가 많이 들면 책은 아니더라도 제 삶을 돌아볼 때 그래도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래 시간을 현재로 가져와 보면 이미 강지은 학생은 그 삶을 영유하고 있는 영상이 눈에 어른 거린다.   심사를 마무리 하면서 다시 한번 제 11 회 신앙도서 독후감공모전에서 수상한 것을 축하하며, 수상권을 빗나간 응모자에게도 시선이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왜 믿음인가?> 작품을 읽은 응모자가 8 명이나 되어, 그 영역에서 선별하는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는 것을 밝힌다. 김사라, 최은진은 글을 읽고 적용부분이 추상적이어서 정서의 전달이 약화되었다. 권도근, 이순희, 허경조는 책 내용의 서평, 서술에 국한된 것이 약점이 되었으며, 황인례는 책의 전체 내용 개요가 부족하였다. 공통적인 것은 정서의 감정이입이 공감과 설득의 측면에서 다른 독후감 작품 보다 다소 흔들렸기에 수상권에서 한 발 늦은 것 뿐이다. 그러므로 모두 당선권 안에 들어도 전혀 손색 없는 작품들이다. 그 작품들도 가능하면 함께 나눌  방도를 찾을 것이다.    이번회의 작품을 하나로 묶으면 손색없는 다양성 측면에서 신앙적인 서간집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그만큼 우열을 가리기 가장 어려웠던 역대 심사 진통을 겪었다. 독후감 공모를 통해 기독교 문화와 양식이 살아 움직이는 생태를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빛의 소명을 비추는 적절한 방법이기도 하다는 전제를 남기며, 독후감 심사와 총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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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뉴스] “기술의 시대에 영성이 인간다움을 지킨다” 크리스천헤럴드2025.12.03
     “AI는 인간의 지능을 능가할 수 있지만 영혼을 갖지 못한다. 기술이 신의 자리를 넘보는 시대일수록 영성이 인간다움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된다.”최근 햇불회관 화평홀에서 개최된 '인공지능(AI)과 기독교'라는 주제의 제31회 샬롬나비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김영한 박사(샬롬나비 상임대표, 기독교학술원장)는 급격히 확장하는 인공지능 문명 속에서 인간의 영적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했다.김 박사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인공지능과 영성’을 주제로 AI 기술의 구조적 본질부터 사회·신학적 파장까지 폭넓게 분석했다.김 박사는 생성형 AI의 등장이 인간의 인지와 창작 영역 깊숙이 침투하며 삶의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고 말했다.일상생활과 교육, 의료, 정치, 경제는 물론 설교·상담·목회에 이르기까지 AI의 영향력이 확장되면서 기술이 신적 권위를 대체하는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알파고 제로'(인공지능 '알파고'의 업그레이드 버전) 등 스스로 학습하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사례를 들며 기술의 통제 불가능성이 현실적 문제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그는 초지능이 도달할 가능성에 대해 “인류 문명 전체가 윤리·정치·경제·군사적 영역에서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정보 제공, 사회적 편향, 감시 체제 강화, 인간 소외, 대규모 실업과 양극화 등은 이미 눈앞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설명이다.그러나 김 박사는 AI가 아무리 고도화되더라도 인간 고유의 내면적 차원에는 닿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AI는 계산·확률·패턴을 처리하는 기계일 뿐이며 성스러움, 경외, 기도, 회심, 용서와 같은 영적 체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인간 의식을 ‘생명과 영성이 결합된 존재론적 차원’으로 정의하며, 인간이 가진 의식·정서·공동체성은 결국 신학이 다루는 본질적인 영역이라고 강조했다.또한 발제논문에서 AI와 유전공학의 결합으로 등장하는 ‘디지털 영생’ 추구도 강하게 비판했다. 인간의 뇌 데이터를 영구 저장하거나 로봇과 결합해 능력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기술적 전능성을 향한 자기신격화이며,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흐름으로 규정한 것이다.그러면서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담론 역시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이 신의 자리를 대체하려는 위험한 상상력이라고 평가했다.이어 김 박사는 AI 시대에 교회와 신학이 감당해야 할 역할을 제시했다. 그는 먼저 기술이 인간을 가르는 냉혹한 효율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교회는 관계와 돌봄, 공감과 공동체 같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정서와 만남, 인격적 관계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는 진단이다.또한 AI를 신앙의 도구로 활용하되 신앙의 주체로 오인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설교, 상담, 목회의 핵심은 인격과 영성에 있으며 알고리즘이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AI가 제시하는 방대한 정보는 목회적 보조 도구로 쓰일 수 있지만, 결국 말씀을 전하는 주체는 영적 권위를 갖는 인간 목회자여야 한다는 것이다.김영한 박사는 신학이 기술 문명을 향해 적극적으로 해석의 틀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 이해가 흔들리는 시대에 창조·영혼·인간다움·구원·영생 같은 신학적 주제가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기술의 위험을 선제적으로 다루기 위해 국제적 규제와 공동선에 기반한 AI 윤리가 시급하다고도 강조했다.발제의 결론을 통해 김 박사는 “AI는 결국 인간이 만든 반려 기계이며 인간의 영혼을 대체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 위에 군림할 때 문명은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으며, 영성의 회복이야말로 AI 시대를 돌파할 근본적 힘이라고 말했다. 결국 AI가 주도하는 미래가 아닌, 인간의 영성이 기술을 이끄는 미래만이 건강한 문명의 조건이라는 것이 김영한 박사의 강조점이라고 할 수 있다.한편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김영한 박사의 기조강연 외에도 이우기 박사(인하대 산업경영공학과), 김한원 박사(빛과소금교회, 서울장신대 겸임교수), 김영선 박사(협성대 명예교수)가 주제발제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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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뉴스] 신천지, '연애 미끼 포교' 확산…청년층 노린 위장 소개팅 주의보 크리스천헤럴드2025.12.03
    최근 로케이션 소개팅, 심리팅, 소규모 매칭 행사 등 이른바 소개팅 열풍이 불면서, 이에 편승한 포교가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SNS 기반의 '소개팅 가장 포섭' 사례가 대표적이다. 탈퇴자들이 제보한 계정들을 확인한 결과, '소개팅', '프로필 매칭' 등을 내세워 길거리 만남과 파티룸 모임, 로테이션 소개팅 등을 홍보하고 있었으며, 대부분 비공개 DM 문의 방식으로 운영됐다. 행사는 합정, 서울대입구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뿐 아니라 기독교계 대학 인근에서도 진행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9월 숭실대, 명지전문대 등 일대에서는 '연애 팝업', '프로필 소개팅' 등으로 위장한 신천지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는 20~40명여 명이 참여했다는 홍보 문구가 붙었지만, 제보에 따르면 신천지 신도들이 일반 참가자를 가장해 대거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개팅 행사에 관심 있어 참여한 일반 참가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천지 신도와 관계를 맺게 되고 이후 포섭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천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겉보기에는 건전한 연애 이벤트 같지만 실제 목적은 포섭"이라며 "특히 기독교 대학 주변을 집중적으로 찾는 것은 전략적 접근이다. 무종교인보다 기독교인이 내부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또 다른 신천지 탈퇴자는 "최근 제명자나 탈퇴자에게까지 '다시 돌아오라'는 연락을 돌릴 정도로 전도율이 떨어진 상황"이라며 "연애 감정으로 개입된 관계는 상대가 신천지임을 알아도 쉽게 끊어내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청년층의 외로움과 관계 욕구를 포섭의 통로로 삼는 신천지 활동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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