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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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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감사의 계절, 11월에 드리는 감사 크리스천헤럴드2025.11.17
    1 오늘도 새날 주시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특별히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폭포수같이 내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첫 시간을 열게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2 아브라함을 대책 없이 부르신 것 같지만 그에게 명령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할 때 이유도 묻지 않고 순종한 아브라함을 마침내 거부가 되게 하시고 믿음의 조상까지 만드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서 나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을 주시기를 약속하셨으니 함께 이 복을 동료 사모님들에게도 전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3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전에 반드시 그릇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그 기간 동안은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마다 답답하지만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그릇을 준비하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상상을 초월하는 축복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찬송과 감사를 드립니다.4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은 어떤 경우에도 겸손할 수 있는 복입니다. 내 그릇 안에 무엇이 담겨 있다면 비워질 때까지 기다리시는 이유도 복을 누릴 수 있는 겸손을 만드시는 시간이기에 기다림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님을 후에 비로소 알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5 다윗에게도 오랜 기간 동안 예상치 못한 사울로부터 쫓기는 시간을 허락하신 이유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만드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난만이 이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기에 오늘의 고통은 결국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성취되는 시간이기에 이때 나오는 감사는 뜨거운 눈물이 범벅되어 나오는 감사입니다6 우리가 추구하는 복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에 들지도 않습니다. 때로는 마시기에 쓴 잔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는 자신의 기호와 상관없이 달게 받고 견디어 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이기에 이런 자가 되게 하실 것을 기대하며 감사를 드립니다.7 우리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를 원하며 인정을 받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중심의 사람은 사람의 인정과 칭찬보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것으로 충분하게 생각하고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니 이런 성숙한 신앙을 간절히 바라면서 감사를 드립니다.8 전 세계 경제가 위기에 있는 현실을 볼 때마다 내일의 염려가 밀려옵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과 상관없이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강조하시는 것은 우리는 부모 없는 고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늘 아버지가 책임져 주실 것을 믿을 때만이 그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하나님의 자녀 됨을 잊지 않고 현실 속에서 믿음을 살아낼 것을 다짐하며 감사를 드립니다.9 선생님의 죽음으로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19)라고 말씀하신 이후부터는 제자들이 담대해진 것처럼 오늘날 불안증과 공포에 시달려 벌벌 떨고 있는 자들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 주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해 주실 것을 간곡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감사를 드립니다.10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채 찍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울고 있는 여인들에게 당부하시기를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와 자녀들을 위해 주님이 주시는 눈물을 흘리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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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이영훈 컬럼 - "아주 보통의 하루"를 위하여 크리스천헤럴드2025.11.17
     “오늘도 별일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이 말이 주는 느낌이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아보하’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말로, 특별한 사건이나 성취 없이도 평범하고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화려한 일상을 연출하거나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애쓸 필요 없이, 그저 무탈하게 보낸 하루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행복을 쫓아 달려가는 것조차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아보하’는 새로운 위안이 되고 있다.돌이켜보면 이러한 ‘아보하’의 정신은 성경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라고 말씀하셨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치신 것이다.시편 기자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노래하며, 들의 짐승과 공중의 새까지도 먹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일상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은혜를 깨달았다.예레미야애가에는 이런 고백이 담겨 있다. “야훼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22~23). 하나님의 은혜는 매일 아침 새롭게 주어진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따뜻한 밥 한 끼, 가족과의 소소한 대화, 편안한 잠자리까지 이 모든 평범한 순간들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그런데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더 행복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SNS에는 화려한 일상과 특별한 경험들이 넘쳐나고, 더 큰 성공과 더 많은 성취를 추구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이 그런 것들을 얻어도 마음은 더 공허하다고 호소한다. 그리고 다시 더 큰 것을 찾아 헤매게 된다.‘아보하’는 이런 행복 강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특별한 성취나 화려한 경험이 없어도 괜찮다고, 오늘 하루 큰 탈 없이 지낸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는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과 닮아있다.그렇다면 신앙인이 ‘아보하’를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감사하는 마음이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모든 순간에 감사해야 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라는 말씀처럼, 평범한 일상 자체가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다.둘째,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이 오늘 맡겨주신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이다. 매일의 기도, 말씀 읽기, 이웃을 향한 작은 배려 등 평범해 보이는 신앙의 실천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예배가 된다.셋째,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화려해 보이는 삶과 비교해 자신을 평가절하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고유하게 지으셨고, 각자에게 맞는 길을 예비하셨다. 남의 길이 아니라 내 길을 걸을 때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다.이 세 가지를 실천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거룩한 시간이 된다. 거창한 활동이나 큰 헌신이 아니어도 괜찮다. 하나님은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매일 경험하는 바로 오늘, 이 평범한 하루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특별할 일이 없어 보이는 일상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거룩한 시간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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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23 - 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11 - 윌리엄 스크랜튼 크리스천헤럴드2025.10.22
    조선 초기 선교사들의 스트레스와 탈진은 동료 간의 갈등이 한몫을 차지한다. 선교사들 간의 서로 의로운 경쟁과 충돌 및 복음을 향한 열정이 빚어낸 과정 중의 문제이다. 세계복음주의연맹은 매년 20명 중의 1명이 선교 사역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 중에 직무 역할과 관계 갈등은 사유 중 하나이다. 특히 의사직은 정서적 탈진 비율이 높다. 의사 윌리엄 스크랜톤(William B. Scranton)은 1885년 5월 제물포를 거쳐 정동에 도착했다. 알렌 선교사를 돕다가 그해 9월에 자신의 집에서 정동병원을 개원했다. 그는 “민중이 있는 곳에 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가난하고 소외된 백성을 위해 무료진료를 해주었다. 서대문, 남대문, 동대문 지역에 시약소를 설립하고, 남대문 주변에 병원과 병원 내 상동교회를 설립했다. 그는 민중과 함께 복음을 전하여 민족운동가 전덕기를 양성했다. 전덕기는 스크랜톤의 인덕에 반해 그의 집에서 일하며, 세례를 받았고, 독립협회와 을사늑약 무효 상소운동과 전도활동을 펼쳤다. 상동교회는 민족독립운동을 준비시키고, 33인 민족대표 여러 명을 배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스크랜튼은 감리교 선교사업을 총괄하고, 시병원, 상동과 애오개의 진료소, 정동의 보구녀관을 돌보았고,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교육을 감독했다. 그는 광산소속 의사, 금광 부속병원 사역 등 조선에서 31년간의 사역을 감당했다. 그의 어머니 메어리 스크랜튼은 조선의 여성 교육의 대부인이었다. 그녀는 1886년 5월 31일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을 설립하고, 여성들만의 주일학교 조직, 여선교부 주관의 동대문선교사업, 공옥여학교 설립, 감리교 협성여자신학교의 발전 등 여성들의 불평등과 억압에서 해방하며, 여성교육과 복음전도의 소명을 다했다.필자는 스크랜튼의 탈진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신체적 탈진이다. 그는 의사로서 1886년부터 1889년까지 연인원 12,209명, 1901년까지 5만명에 이르는 환자를 치료했고, 교육, 출판, 행정, 토착 전도와 양성, 신학 교육 등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므로 탈진했다. 스크랜튼 대부인도 많은 사역으로 고된 사역과 100마일이 넘는 거리를 도보로 순회전도 하며, 만성 설사와 여러 차례의 중병과 뇌졸중을 치뤄 탈진을 했다. 둘째, 심리적 탈진이다. 스크랜튼은 세 번의 큰 갈등을 경험했다. 고집 센 맥길은 조선 감리교선교 관리자인 스크랜튼에게 순응적이지 않아 갈등을 빚었다. 조선선교 회계를 맡은 아펜젤러는 먼저 예베당을 지으려 하고, 스크랜튼은 빈민선교를 우선시하여 병원을 세우려 함으로써 갈등을 빚었다. 미국 감리교 선교부와 조선에 주재하는 선교사들은 아펜젤러를 지지했다. 배재학당의 정체성 문제도 스크랜튼의 견해가 무산되었고, 올링거와 긴장이 있었으며, 친일 인사 해리스와도 정면 충돌했다. 그는 조선 감리교선교 관리자 및 후일의 총리사와 감리사로서 실패했고, 자신의 권위에 소상을 입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스크랜튼은 늘 완벽하고 원칙주의자로서 제안을 했지만, 매번 지지를 얻지 못했고, 선교 인력을 보충해달라는 요구 조차도 외면당했다. 선교본부와 다른 동료 선교사들에게 호응을 받지 못하므로 심신이 탈진했다. “수지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나치게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중립과 타협이 없는 꼿꼿한 그에게 갈등과 충돌은 심신의 탈진이었다. 결국 선교사를 사임했다.셋째, 문화적 탈진이다. 조선당시 하층민 여성은 매매의 대상이었고, 남자 선생이 남녀내외법 가운데 이화학당에서 교육을 시키는 것은 항의 적이었으며, 기독교금지법이 존재하는 사실을 알고도 교육과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스크랜튼의 탈진회복 방법을 모색한다. 첫째, 희생과 헌신이다. 스크랜튼은 장티푸스 병에 걸렸을 때 회복하게 된다면, 조선으로 가겠다고 서원한 것을 지켰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따라 헌신하고, 조선을 위해 희생했다. 둘째, 소명의식이다. 그는 엘리트 집안의 상위 1프로에 해당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가난하고 병든 민중을 위해 소명을 감당했다. 자신의 집을 개조해 정동병원을 세웠고, 소외된 백성이 거주하는 변두리에 병원과 교회를 설립했다. 셋째, 겸허한 자세이다. 선교부와 동료 간의 갈등과 충돌로 인해 조선에서 22년간의 감리교 선교사직과 목사직을 사임했지만, 성공회로 이적하여 평신도 의사로서 10년간이나 더 개인사역을 했다. 자신의 위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소신껏 의사로서 사명을 다했다. 넷째, 휴식이다. 그는 평범한 일반 사람의 집에서 민박을 하며, 안식했다. 스크랜튼 대부인도 중병으로 인해 휴가를 떠났지만, 회복 후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사역에 진력했다. 휴식은 영혼육의 안식이 된다.서로 간의 갈등이 있을 때 갈등 전환의 변화를 인식하고, 자기를 성찰하며, 하나님을 발견하는 시간으로 본다면, 자신이 나아갈 방향과 더 성숙한 기회를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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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 불 신 크리스천헤럴드2025.10.22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일자리를 알아보는 딸에게 제일 먼저 찾아온 취업 기회는 사기였다. 자격조건도 까다롭지 않고 알바하기 좋은 일이어서 잘됐다 싶어 지원하고 알아보니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속기전에 깨닫고 경찰에 연락하겠다고 하니 바로 연락이 끊겼다. 문제는 이 취업의 기회가 다녔던 학교 이메일을 통해서 왔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찾는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이메일 계좌를 만들어서 보낸 것이다. 겪고나서 알아보니 이런 사기가 많아서 학교에서도 졸업생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믿고 보았던 학교 이메일도 이제는 진짜인지 확인해야 한다. 얼마전 미국 플로리다에서 한 목사의 사기가 들통나서 대대적 체포가 이루어졌다. 체포를 당할 때 촬영되었던 그의 집은 어마어마한 맨션이었다. 수많은 고가의 스포츠카들도 카메라에 잡혔다. 이 목사는 복음을 빌미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헌금을 강요해서 받은 돈으로 부와 사치를 누리고 살았다. 예수님을 팔아 번돈으로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데 썼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라고 헌금한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분노하고 상처받았을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딸에게 접근한 사기꾼이나 이 목사나 무엇이 다를까 싶다. 순수한 사람들의 간절함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나쁜 사람들이다. 믿는 마음을 의심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하는 악한 행위이다.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당해도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둘 중 누가 더 나쁘냐 고 묻는다면 나는 이 목사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믿어야 하는 직분을 불신하게 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치면 마음을 닫게 되고 몸이 다치면 몸을 사리게 된다. 외적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면역력의 도움으로 스스로 회복이 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렇지 않다. 특히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닫힌 마음의 문은 좀처럼 다시 열기 힘들다. 그 상처의 골이 깊어지면 완전히 마음을 닫을 수도 있다. 다친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사역으로 방문한 교회 마당에서 우연히 발견한 처음보는 나무가 있었다.  특이하게도 나무 아래부터 손이 닿을 높이까지 가시가 가득하다. 더 특이한 점은 그 이상의 높이부터는 가시가 전혀 없었다. 아무래도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접촉이 많은 부위에 가시가 생긴 것 같다.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자연 생태계를 보면 이런 현상이 낯설지 않다. 외적인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생명체의 본능이다.교회를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여럿 있지만 그 중 나오지 않아야 할 이유도 나오는데 바로 신뢰에 대한 부분이다. 교회에 실망할 수 있고, 교역자들이 기대에 못 미 칠수 있지만 신뢰할 수 없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복음의 기쁜 소식과 위로를 전하는 자들이다. 그런 우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한다면 복음의 사역을 역행하는 것과 같다.  그 어느때 보다 우리의 일상이 각종 통로를 통해 노출되는 시대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만큼 복음을 살아내려는 진정성이 중요하다. 나로 인해 불신이 쌓여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잠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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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다가감이다 크리스천헤럴드2025.10.22
    한국의 애니메이션 ‘케데헌’(K-Pop Demon Hunters)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악령을 퇴치하는 K팝 여성 아이돌이라는 콘셉트, 한복과 퇴마, 저승사자와 같은 한국적 요소가 팝 문화와 절묘하게 융합되며 세계적인 문화적 파장을 일으켰다. 해외 팬들은 “전통과 현대가 환상적으로 섞였다”고 말하고, 글로벌 플랫폼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동양적 스토리텔링”이라며 극찬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 컨텐츠를 보며 한국 교회는 어떤 질문을 받고 있는가.이런 질문을 해보자. “왜 이런 스토리는 교회에서 나오지 못하는가?”교회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고유한 세계관이 있다. 창조와 타락, 구속과 회복의 서사.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역사, 공동체의 사랑이라는 드라마.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깊고, 감동적이며, 궁극적인 진리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교회 내에서만 머물러 있고, 세상 속으로 제대로 흘러가지 못한다.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런데 ‘케데헌’은 그 스토리의 본질이 강해서가 아니라, 이야기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공감받았다. 노래와 춤, 색채와 상징, 스토리와 감정이 하나로 엮이며,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었다. 무속적 상징이 포함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기 문화 안의 정체성과 언어로 해석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했다. 반면, 교회는 여전히 자신들만의 언어 안에 갇혀 있다.“십자가를 믿어야 합니다”, “회개하십시오”,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라는 말이 옳지만, 세상은 그 말을 듣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말은 공감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는 늘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지만, 정작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공감 없이 권면하고, 설명 없이 진리를 주장하며, 고통의 언어에 응답하지 않은 채 영적 전쟁만을 외쳤다. 물론 교회는 세상의 문화에 무분별하게 휩쓸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문화와의 단절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 우리는 너무 자주 ‘세속화’를 경계하며, 복음의 ‘소통화’를 놓쳐버렸다. 교회는 문화적 언어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세상과 연결되는 정서적 통로를 닫아버렸다.이제 교회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십자가의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복음을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품은 이야기를 이 시대의 언어로 풀어낼 수는 없는가? 한국 교회는 독특한 문화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 뜨거운 찬양, 통성 기도, 공동체 중심의 신앙, 한(恨)의 정서를 품은 회개의 기도.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우리 안의 감동’으로만 소비해 왔다. 세상을 향해 번역하려 하지 않았고, 공감 가능한 이야기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이제는 우리가 가진 이 문화적 유산을 ‘신앙의 예술’로 확장해야 한다. 신학적으로 검증된 컨텐츠를 바탕으로, 드라마, 음악, 영상,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은 단순히 젊은 감각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깊이를 품은 ‘우리만의 언어’를 찾는 여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언어는 경건과 진리, 동시에 상처받은 시대의 감정을 품어야 한다. 교회는 더 이상 ‘말만 많은 공간’이 아니라,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고, 감정이 머물 수 있는 예술적 공동체로 회복되어야 한다. ‘케데헌’은 우리에게 말한다.“이야기의 본질만큼이나, 전달 방식도 중요하다”고. 교회는 여전히 세상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어떻게 말할지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세상 속의 ‘은혜’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진리의 부족이 아니라, 소통의 부재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진리의 권위를 포기하지 않되, 그것을 사랑과 공감의 언어로 옮겨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는 고립된 언어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복음은 늘 시대의 언어를 입고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갔다. 오늘날 교회가 이 흐름에 눈을 뜬다면, 복음은 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릴 것이다. 회개와 믿음, 순종과 헌신이 다시 시대의 언어로 말해질 수 있다면, 사람들은 교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이제는 말씀이 감정이 되고, 이야기로 되고, 이미지가 되어 세상과 마주쳐야 한다. ‘케데헌’은 결코 복음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교회는 그 컨텐츠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이 복음을 타협하는 길이 아니라, 복음을 더 넓게 전하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시대의 언어로 진리를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교회가 회복해야 할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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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15 김광근 - 우리의 약함을 인정할 때 주시는 능력과 힘 크리스천헤럴드2025.10.22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 이사야 40:28-29우리는 때로는 한 발짝 내딛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어도, '지쳤다'는 말이 자주 입 밖에 나올때가 있습니다. 이런 무기력은 단순한 휴식으로는 회복되지 않는 깊은 차원의 고갈입니다이사야 선지자는 그런 지점에 있는 우리들을 향해 하나님의 성품을 상기시킵니다.그분은 지치지 않으시고, 피곤함이 없으신 분시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그분이 자신의 무한한 능력을 지친 자에게 나누어 주신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어느 순간 무너질 수 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데서 진짜 신앙은 시작됩니다.그렇다면,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있습니다.'앙망한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넘어, 전심으로 신뢰하며 그분의 때와 방식에 자신을 맡긴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급히 달려가다가 숨이 찰 때, 멈춰서서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처럼, 앙망은 우리의 내면을 하나님의 호흡으로 다시 채우는 시간입니다.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에 맞는 정확한 방식으로 은혜를 공급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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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22- 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10 - 샬럿 딕스 문 크리스천헤럴드2025.10.02
    중년 여성 선교사를 대상으로 탈진의 원인을 살펴보니 타문화 부적응, 의사소통 부재, 긴장과 갈등, 소외감, 여성 폄하의 시선, 정체성 상실, 과도한 사역 및 불안정한 경제력 등으로 나타났다. 신체적 이상과 심리적 위축과 고립, 하나님과 소원함은 탈진을 넘어 선교사의 중도 탈락을 가져오거나 죽음의 공포와 자살 충동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성국 박사는 중년 여성의 탈진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소명을 재확인하는 회복탄력성을 발견했다. 탈진은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대처방식에 따라 성숙의 기회와 믿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재발견의 시간이 될 수 있다.샬럿 딕스 문(Charlotte Diggs Moon)은 19세기의 영향력 있는 여성 선교사로 꼽힌다. 그녀는 해외선교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로티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7형제 중 넷째로서 1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미망인 어머니로부터 엄격한 신앙훈련을 받았다. 1873년 여동생을 뒤따라 중국 선교로 갔지만, 여동생 에드모니아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4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왔고, 로티는 39년 동안 중국 사역을 이었다. 1885년부터 중국 촌락을 순회하며 전도했고, 1887년 중국인 남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문의 정책에 따라 외국 선교사의 개입이 없이 20년 동안 중국인 목사 리서우딩 집례로 1000여명에게 세례를 시행했다. 이 외에도 덩저우에서 신입 선교사 훈련 및 중국 여성 상담, 그리고 저술활동을 했다.필자는 로티 문의 탈진을 발견하고자 한다. 첫째, 신체적 탈진이다. 20세기 초는 중국에 전염병과 천연두가 휩쓸고, 1911년 반란이 일어나 대규모 기아 상태를 초래했다. 그녀는 1912년 기아대책을 위해 금식하며, 재원을 마련했으나 역부족이었고, 영양실조와 아사 직전에 놓였다. 결국, 본국의 결정으로 귀국하던 중 일본 고베의 선상에서 숨을 거두었다. 둘째, 심리적 탈진이다. 로티 문은 여동생이 선교생활의 중압감, 발작 증세, 그리고 몸이 아파서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외로움과 깊은 우울증에 죽을 것 같았다. 그 후, 일본 선교를 함께 하자고 구혼을 한 남자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다윈 진화론 입장을 지지할 수 없기 때문에 혼자 남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중국의 기근으로 미국에 재원 요청을 했지만, 선교위원회는 이를 거절했다. 통장을 탈탈 털었지만, 너무나 미미하여 깊은 우울에 빠졌고, 더군다나 여동생이 스스로 머리에 총을 겨누어 자살했다는 소식은 깊은 상처를 남겼다. 셋째, 문화적 탈진이다. 여자 선교사가 누구를 가르치거나, 선교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하는 것은 금지였고, 마을에서는 여자 도깨비라고 불려져 중국인과 동화되는 것은 힘들었다. 고작 여학생 몇 명만 가르치는 일은 로티에게 지독한 권태와 혐오와 실패한 인생처럼 자각됐다. 현지 이사 T. P. 크로퍼드의 강압적 권위도 사임의 위기를 만들었다. 로티 문의 탈진회복은 다음과 같다. 첫째, 헌신하는 마음이다. 그녀가 17세 때 강한 회의론자를 넘어서서 1858년 전도집회에서 전도자의 부르심을 입은 뒤, 세상을 떠나기까지 중국 사역에 헌신했다. 둘째, 강한 여성으로서 꿈의 실현이다. 원대한 사역을 꿈꾸는 여성 선교사로서 신념과 정체성을 자리매김하고, 남자 선교사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편견을 깼다. 남녀 선교사가 평등한 권리를 갖도록 저술하고, 강연으로써 남침례교인들에게 호소력을 지녔다. “백만여 명에 이르는 남부 침례교도들이 중국 전체에 남자 선교사가 겨우 새 사람 파송 할 능력밖에 안된다는 게 이상하다.” 남자 선교사들이 오지 않는다면, 여성 선교사들을 파송 해달라고 주장했다. 로티는 30개 이상의 교회를 설립했고, 핑투는 남침례교 최대의 선교 중심지가 되도록 공헌했다. 그녀에 의한 ‘로티 문 성탄절 헌금’은 전설적인 물결을 만들었다. 1888년 첫 번째 성탄절 헌금은 원래 목표액 보다 초과되어 세 명의 신입 여성 선교사들에게 봉급을 줄 수 있었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액수는 계속 증가했다. 셋째, 재능의 발휘이다. 로티는 위기 때마다 글을 써서 호소력을 전파하여 중국선교에 설득력을 얻었다. 다재다능한 글솜씨는 교파 출판물과 외국 미션 저널에 편지하여 선교의 필요를 간청했고, 여성선교연합의 창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티의 마지막은 건강이 악화되어 생명을 뺏겼지만, 탈진의 위기 때 마다 강한 여성으로서 신념과 선교의 열정을 재발견함으로 극복하였다. “내가 천개의 목숨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것들을 중국의 여인들을 위해서 내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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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가을의 시작, 10월에 드리는 감사 크리스천헤럴드2025.10.02
    1 새로운 달, 새로운 날을 주신 하나님이 이달에 주실 은혜를 구체적으로 알게 해 주시고 주실 은혜를 받을 그릇을 준비하라는 부탁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다짐하며 새달을 시작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2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구원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는 옛것은 모두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다고 하시는 주님은 과거를 떨쳐 버리고 새로운 날 새롭게 살아가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신 대로 실습하다 보니 진한 감동과 감사가 밀려옵니다.3 매일 찾아오는 근심 걱정을 주님께 고백하고 있을 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는 명령이 강하게 들려옵니다. 염려는 단지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내가 주인이 되는 데서 나오는 것이기에 엄밀히 말하면 우상숭배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우상들이 내 안에 너무 많은 것을 깨닫고 새달에는 숨어있는 우상들을 샅샅이 내 쫒을 것을 결단하며 감사를 드립니다.4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알 때 염려는 물러가고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할 것을 과거 신앙생활 속에서 증명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덧 잊은 채 염려의 종이 되어 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본 후부터 기도의 제목을 다시 기록하며 감사를 드립니다.5 갈수록 불경기가 몰아치는 현실 속에서 소리 없이 들어온 재물의 우상은 우리의 신앙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돈이 우리의 노후대책이 되는 줄 알고 열심히 일을 하여 넉넉하게 쌓아 놓습니다. 그러나 돈의 액수가 그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쌓이는 돈은 우리에게 또 다른 염려를 안겨 줍니다. 돈은 사용하라고 주신 것인데 그것을 사랑하여 축적하려고 할 때 예기치 못한 불안과 초조가 생깁니다. 이러므로 돈의 성질과 사용법을 잘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6 돈이 없으면 불편할 뿐 죄는 아닙니다. 돈의 씀씀이를 보면 믿음과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우선순위가 무엇이냐에 따라 돈의 사용도가 달라지는데 그것 또한 인격과 비례되는 것이므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신 말씀을 다시 새겨보며 감사를 드립니다.7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불편한 사람을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대하여 자세한 방법을 알려 주시는데 우선은 하나님이 나의 인격을 잘 다듬어 주시려고 준비하여 보내주신 분이라 생각하니 새로운 안목과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하심인 줄 알고 감사를 드립니다.8 값비싼 다이아몬드의 재료는 석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갈고 닦여서 어느 날 빛나는 보석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깎일수록 빛이 다양하고 화려합니다. 이 보석이 결혼반지에 사용되는 것은 부부가 처음 만났을 때는 석탄과 같이 새까맣지만 서로 갈고 연마하는 동안 반짝거려서 마침내 성숙한 부부로 하나 되게 하시고 흠과 티가 없는 가정으로 만드실 것을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9 이처럼 공동체 안에서 맘에 들지 않는 사람 앞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찾아 나설 때마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특히 서로 다른 점들을 존경해 주고 서로 보완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 사명입니다. 도저히 화목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자들을 향해서도 화평을 만들어 가라는 지상 명령을 받았으니 무슨 일을 만나든지 성령의 음성을 순종하는 태도를 취할 때 성령의 열매가 그득하게 맺혀질 것을 바라보면서 결단하게 하심 감사합니다.10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죄인인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삼아 주셔서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굳게 하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도 이런 하나님의 목적을 몰라서 불안의 노예가 된 채 힘들어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찾아가셔서 다시 정체성을 되찾아 새로운 비전을 갖고 새 출발 하게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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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정재영 칼럼 - 한국교회는 양적 부흥을 이룰 수 있을까? 크리스천헤럴드2025.10.02
    작년에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한국 개신교 장래 인구 추계를 발표했다. 15개 교단의 교세통계 자료와 우리나라 인구통계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에서 2050년 한국 개신교 인구는 11.9%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828만 명(16.2%)으로 추정되는데 560만 명으로 3분의 1 정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 수치에서 이단 신자와 가나안 신자를 제외하면 정통 교회에 출석하는 개신교 신자 수는 400만 명 이하가 되고 비율로는 10% 이하가 될 것이다. 이것은 현재 대표적인 개신교 교단 2개를 합한 것보다 적은 수치이다.이러한 상황에서 교회 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신자 수의 감소 추세를 감안할 때 교회 수는 대략 4만 개 안팎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어려움을 겪는 교회는 교인 수가 100명이 되지 않는 작은 교회들이다. 올해 발표한 예장 통합 교단의 소형 교회 비율은 72.4%로 나타났다. 이것은 3년 전 68.9%에서 더 늘어난 수치이다. 가장 안정적인 교단에서 이 정도라면 군소 교단 상황은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소형 교회의 비율이 8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이러한 추세에 따라 25년 후에는 상당수의 교회는 재정 자립이 어렵고 목회자 사례비를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재정 자립이 가능한 교회는 1만 개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다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발표한 ‘부흥하는 교회, 쇠퇴하는 교회’ 관련 통계를 보면, 부흥하는 교회에서 100명 이하 교회 비율은 52.5%였고, 쇠퇴하는 교회는 69.4%로 나타났다. 이렇게 작은 교회에서 쇠퇴 경향이 더 크다면 절대 다수인 소형 교회들은 말 그대로 고사 상태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작은 교회들 사이에 합병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소형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해서 안정적인 규모를 이룰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이 조사에서 소형 교회가 부흥하는 경우는 중대형 교회에 비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소형 교회와 소형 교회의 목회자들은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현실적인 자구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 조사에서 부흥하는 교회 목회자는 교인 부흥의 요인으로 ‘예배와 설교’(45%)를 가장 높게 꼽았다. 그리고 ‘교인 간의 친밀한 교제와 공동체 의식’ 39%, ‘소그룹 활성화’ 29% 등의 순이었다. 예배와 설교가 주된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고, 2~3위에 해당하는 공동체성과 소그룹 활성화가 교회의 부흥을 이끄는 핵심 내부 동력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교인 연령별 구성을 보면, 부흥하는 교회는 교회학교 학생부터 고령 신자까지 고르게 분포돼 있다. 반면에 쇠퇴하는 교회는 고령 신자가 4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교회학교 학생과 청년은 매우 적었다. 특히 교회의 허리인 3040 세대에서 차이가 컸는데 부흥하는 교회의 47%가 3040 세대가 증가했다고 응답해, 쇠퇴하는 교회(3%)와 큰 격차를 보였다. 쇠퇴하는 교회에서는 3040세대가 감소한다는 응답이 65%에 이르렀다. 따라서 ‘3040 세대를 어떻게 유입시킬 것이냐’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 3040 세대의 자녀들이 교회학교 학생들이 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교회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실제로 부흥하는 교회에서는 코로나 이후에 다음 세대가 증가했다는 응답이 절반 가까이(44%)에 달했다. 반면에 쇠퇴하는 교회는 단 5%만이 증가하였고, 78%가 감소해 큰 대조를 이뤘다.신자들의 신앙 수준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는데, 부흥하는 교회가 쇠퇴하는 교회에 비해 1단계 신앙 비중은 낮고, 4단계 비중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흥하는 교회는 성도의 신앙 수준이 쇠퇴하는 교회보다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흥하는 교회와 쇠퇴하는 교회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사역 참여 문화이다. 부흥하는 교회는 교회 사역 프로그램 수(44%)와 교인들의 사역 참여도(51%) 모두 절반 안팎으로 증가했으나, 쇠퇴하는 교회는 각각 8%, 7%에 그쳐 극명한 격차를 보였다. 이는 부흥하는 교회가 활발한 사역 참여를 통해 교회의 역동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이러한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들은 시사하는 바가 커서 교회 사역에 참고할 부분이 많다. 그런데 부흥하는 교회들의 성장 요인은 그리 명확하지 않다. 앞에서 설명한 요인들로 인해서 양적 성장을 이룬 것인지, 아니면 양적 성장이 이루어져서 이러한 특징들이 나타났는지 인과 관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교회가 1교인 1사역을 강조하지만,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교회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회 안에 사역 참여 문화를 만들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그럼에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신자들의 신앙 수준이다. 신앙 단계가 낮다면 신앙생활이나 교회 생활의 모든 면에서 적극성이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의 신앙 성장이 이뤄지도록 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교인의 인구 구성이 역 피라미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3040 세대를 유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3040 세대의 특징을 고려해 이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 의사 결정 구조를 민주적으로 개선해 젊은 사람들이 교회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데 참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한국교회에서 부흥하는 교회가 얼마나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정확한 통계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2023년에 출판된 ‘한국기독교 분석리포트’에서 신자들 가운데 출석하는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는 응답은 35.9%였고, 정체 또는 감소하고 있다는 교회는 64.1%였다. 감소한다는 응답보다는 성장한다는 응답이 많았지만, 성장한다는 응답은 98년 71.1%에서 절반이 줄었고, 정체한다는 응답은 22.2%에서 51.3%로 두 배 이상 늘었다. 1970-1980년대에 한국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으나 당시부터 나타난 여러 가지 부작용의 여파로 한국 교회는 침체기로 돌아섰고, 이제는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따라서 성장 자체를 추구하기 보다는 교회가 본래의 존재 목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건강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그들이 모여서 거룩하고 능력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본연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할 때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질적으로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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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14 김광근 - 강한 척 말고, 주 안에서 강해지십시오 크리스천헤럴드2025.10.02
    "끝으로 녀희가주 안에서와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 에베소서 6장 10-1 1절세상은 말합니다. "강해져야 산다."그래서 우리는 더 열심히 배우고, 버티고, 싸우며 강한 척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진짜 강함'은 내 안에 없다는 것.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외칩니다."주 안에서 강건하여지라." 강건함은 결심이1 아니라 위치의 문제입니다. 내가 주 안에 있느냐, 아니냐. 여기서 모든 것이 갈립니다. 바울은 단순히 "싸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서라"고 말합니다. 넘어지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으라. 왜냐하면이싸움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마귀의 간계를 이겨내는 영적 전쟁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내가 너를 강하게 하리라. 너는 내 능력 안에 거하라.""강한 척하지 말고, 내 안에서 강해지라."지금 흔들리고 계신가요? 힘이 빠지고, 마음이 무너지고 있나요? 그렇다면 조용히 이 말씀 앞에 다시 서 보십시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진짜 강함은 주 안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 있는 사람은, 끝까지 버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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